종교의 탈선을 방치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 온다.
작성: 이준엽 | 게시: 2025년 5월 26일
“대가리 박는다 실시!” 전광훈의 이 경악스러운 발언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위기를 드러낸다. 그는 최근의 종교행사에서 각 지부의 성과 미달을 꾸짖으며 각 지부 위원장들에게 ‘원산폭격’을 명령하고, 일부 위원장에게는 "북한 가서 살고 싶냐?"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종교적 권위의 위험한 발현으로 해당 행사가 종교라는 이름을 내건 정치 행사임을 말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탈이 전광훈교단이 최초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도 일부 종교 단체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내밀화해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논란이 일었고, 이를 많은 국민이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최근 몇 년간, 특정 종교 세력이 노골적으로 정치와 결합하며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제 상례처럼 되어 적미성저(積微成著: 작은 것이 쌓여 큰 문제가 됨을 경계하는 표현.)의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단지 상대방이 집권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 하나만으로도, 박빙의 승부수를 만드는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대형 교단 한 곳의 일탈은 곧 정치적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확인된 상황인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균열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종교와 정치, 집단과 개인, 이념과 상식이 얽히고 설킨 이 혼란의 현장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종교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북한 가서 살고 싶냐”는 발언들은 특정 정치 이념을 내세워 집단을 결집시키고, 신앙의 이름으로 정치적 목적을 강제하는 모습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범위를 벗어난 것은 물론, 그 폭력성은 공공의 질서와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반(反)민주적 퍼포먼스로 봐야 한다.
문제는 이런 기행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 정치 일각에서는 여전히 전광훈 목사와의 관계를 ‘선 긋는 듯 하지만, 실상은 선명하게 그어지지 않는’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수 진영에서 전 목사와의 정치적 관계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영향력과 지지 기반을 은근히 긍정하거나 이용하는 이중적 태도가 관찰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처럼 종교와 정치가 결합한 현상은 이미 여러 방법으로 구현 중이며, 전광훈 목사가 자신감 있게 정치적 발언과 폭력적 집회를 이어가는 것도, 종교가 사적 전유물이었을 때 선거에서 성과로 나타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종교의 정치화는 이미 '잠재적 위험'이 아닌 '현실적 위협'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러한 전광훈교단의 모습을 자신들의 이상향 쯤으로 여길 트럼프 진영의 판단이다. 이미 트럼프는 미국 내 복음주의(Evangelical) 집단과 강력한 정치적 동맹을 맺었고 현 행정부에는 그들에서 추천된 자들이 들어와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 내 전광훈교단과 같이 극우주의를 매개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어 있다.
종교의 탈선과 정치적 극단주의의 결합
"왜 우리는 미국처럼 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그들 범극우 연맹에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서부지원 폭동 사건은 그 단면이었다. 또 서부지원 폭동자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 수위는 전광훈과 같은 극우주의 지도자들의 발언을 더 신뢰감 있고 영향력 있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세계 주요국에서 종교가 조직적으로 정치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려는 흐름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종교 윤리의 문제를 넘어, 헌법적 질서와 시민사회의 자유, 나아가 공공 권력의 정당성을 침식시키거나 편향화시키는 중대한 사안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혼란과 분열의 상황이 외부 위협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극단화된 종교 세력이 사회 전반에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통합이 아닌 배척과 배제를 조장하며, 법마저 그들에게 기울어진 판결을 하게 된다면, 북한이 오판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 내부의 극단성으로 인한 심각한 균열 상황이 북한에 퍼졌을 때, 북한인 중에는 이를 해결해야 할 사명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제어할 힘은 김정은이겠지만, 김정은이 남한 내부의 심각한 혼란을 외면하는 것은, 오히려 내부에서 김정은을 비판하거나 권력 교체를 시도하는 극우 집단의 등장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한 북한 내 극우집단이 김정은을 반민족적 인물로 낙인 찍고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 가능성이다. 이는 한국의 보수우파에게도 김정은의 독재가 필요하지만, 김정은에게도 한국 보수우파의 망동이 필요한 연대성에서 출발한 결론이다. 이러한 전개는 유관국들에 위험한 착시 효과로 이어져 위기는 한층 복잡하고 예측 불가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대응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미 보수주의 진영은 종교의 보수적 지향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독교 우파 세력과 긴밀히 연대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내 정치가 주식시장처럼 동조화되는 것을 보며, 혼란과 분열의 묘수가 ‘가치 공유’라는 이름 아래 긍정적으로 반영되거나, 최소한의 비판마저 유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도, 현 시점의 미국이 전광훈교단을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은 쌍동이와 같기 때문이다.
더 큰 경고는 이미 정교합일을 구축한 인도에서 확인된 바 있다. 모디의 BJP와 민족의 용단(RSS)의 연합이 촉발한 대규모 폭력 사태는 인도 사회를 치유하기 힘든 나락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디 정부가 다수 정당의 힘으로 무슬림 다수 지역인 잠무-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한 신권적 정치행위는, 지난 달 초, 인도령 카슈미르 파할감 지역에서 관광객 처형 사건이라는 또 다른 극단의 반발로 나타났다.
한국이 지금 직면한 위기는 단지 종교의 일탈이 아니라,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극단화, 사회의 분열화가 맞물리며 만들어낸 복합 위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화 시도를 법과 윤리의 이름으로 제어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민주주의 안정의 보루가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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