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여전히 베트남 파병자들을 ‘영웅’이라 부르려는 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웅이란 호칭은 국제법적 기준과 양심, 보편 윤리에 비춰볼 때 정당화될 수 없는 위험한 왜곡이다.
국제법상 ‘무력 개입’은 명확히 금지되어 있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은 유엔의 승인 없이, 미국의 일방적 요청에 따라 이뤄진 무력 개입이었다. 이는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내용이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회원국은 국제 관계에서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삼가야 한다.”
한국은 베트남과 전쟁 상태에 있지도 않았고, 베트남에 자위권을 행사한 것도 아니며, 유엔의 공식 결의 아래 참전한 것도 아니다. 이는 곧, 한국이 타국의 내전에 군사 개입함으로써 베트남의 자결권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용병’과 ‘의용병’은 엄격히 구별된다. 일부에서는 당시 한국 군인의 참전을 ‘국가의 명령’이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자발적 계약에 따른 인센티브 기반 참전, 즉 ‘용병’이었다. 이 점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 I (1977) 제47조는 용병을 명확히 규정한다: “금전적 또는 유사한 이익을 위해 적대행위에 참여한 외국인은 용병으로 간주되며, 포로의 지위를 받을 수 없다.”
비록 당시 한국은 공식적으로 군대로 호칭되는 병력을 보냈고, ‘국군’을 명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실질적 구조는 용병적 성격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파병자 개개인이 도덕적 판단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가를 받았지 않은가.
현재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는 무력 개입, 점령 지역의 민간인 대상 학살 및 인권침해에 대해 개별 병사나 지휘관까지 형사 책임을 묻는다. 만약 지금과 같은 기준이 1960~70년대에도 적용되었다면,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 역시 국제 형사법적 조사 대상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베트남 참전을 '영웅적 행동'으로 포장하려 하고 있다.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다음과 같은 불합리한 질문이 성립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러시아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았을 때, 세계는 그들을 ‘영웅’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뻔뻔하게도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베트남에서 같은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도대체 한국인의 역사적 도덕성과 논리의 일관성은 어디에 있는가?
베트남 파병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정당성’으로 바뀌어선 안 된다. '필요'와 '도덕'은 다르며, '용병'과 '영웅'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특히 베트남 참전을 거부한 많은 청년들이 있었고, 그들 또한 한국 사회의 일원이자 도덕적 나침반이었다. 그런 이들 앞에서, 양심이 아닌 돈을 따라 참전한 이들을 ‘영웅’이라 부르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국가가 한때 선택했던 정책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파병은 국제법상 회색지대에 있는 행위였고, 그 선택이 ‘영웅적’이려면 돈을 받지 않았어야 한다. 역사적 과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때 치유된다. 지금 우리가 돈 받고 베트남인 죽인 것을 미화한다면, 미래의 한국은 또 다른 전장에서 도덕적 발언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
이제는 아래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다. “미래의 어느 때, 우리가 했던 일을, 남이 나에게 한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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