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그널은 감정에 기반한 전략이다
최근 미국 측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직접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일관된 분위기는 존재한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거론하며, 마치 ‘무기 수출을 잘하는 나라’가 왜 방위비는 제대로 내지 않느냐는 식의 불만을 드러냈다.
사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한국의 급성장한 무기 수출 산업, 그리고 그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부상한 국방력은, 역설적으로 미국 내 여론에 불편함을 자극해왔다. 한국 유튜브에는 “수십조 원 규모의 무기를 중동, 동남아에 수출했다”는 영상이 즐비하다. 이 장면을 본 미국인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단견도, 그들 입장에선 당연하다
물론 미국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편협하거나 감정적인 시선일 수 있다. 한국은 미국에게 안보를 의존하고, 그 이면에서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하는 나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을 단지 ‘단견’이라 치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자국 우선의 이해관계는 항상 존재하며, 미국은 언제나 ‘돈이 되는 동맹’인가를 따져온 나라다. 트럼프뿐 아니라 미국 내 조야에서도, '이제 한국은 충분히 부유하고 강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그 흐름 속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혹은 철수가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른다.
철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삐쳐서 가는 철수’는 곤란하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적 협력만이 아니다. 역사적 공조와 전략적 이해관계가 녹아 있는 구조다. 따라서 미국이 철군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계획된 전략, 또는 질서 있는 전환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불만에 휩싸여 감정적으로 던지는 철군 카드는, 한국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나아가 미국 본인들에게도 외교적으로 불리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이 ‘스스로도 체면을 지키며’ 철수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외교적 기획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미국을 달래자는 의미가 아니다. 동맹을 관리하는 방식이기도 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보다 자율적 안보 역량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설계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급식을 미국보다 나쁘게 만들 수는 없다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의미 있는 국방 산업국가이자, 생활 수준도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나라다. 단적인 예로, 미국 언론조차 인정하는 한국 학생들의 급식 수준은 미국보다 더 낫다고 평가된다. 이제 와서 미국의 기분을 맞춘다고 학생 급식 질을 떨어뜨릴 수도 없고, 무기 수출을 중단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다.
우리는 스스로 잘나가면서도, 상대가 체면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그것이 ‘균열’이 아닌 ‘전환’으로 보이도록 기획하는 것. 이것이 지금 필요한 외교다.
떠날 수도 있는 친구와의 우정을 유지하는 법
진짜 우정이란 친구가 잠시 서운함을 드러냈을 때, "그래 그럼 가라"며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잠시 화가 났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남겨주는 것, 그리고 서로의 달라진 위치를 인정하되 함께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한미동맹이 지향해야 할 미래형 구조다.
한국은 이제 스스로를 작고 약한 나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강해졌다고 해서, 동맹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외교의 길이 아니다. 힘이 생겼을 때, 신중함도 함께 커져야 한다.
그것이 진짜 자립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