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주둔비를 둘러싼 미·한 논리의 충돌과 모순

작성: 이준엽 | 게시: 2025년 5월 16일 | 수정: 2025년 5월 23일

‘고정된 항공모함’의 비용을 자발적으로 감당하며, 영구적인 적을 필요로 하는 정치

최근 미국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섬, 고정된 항공모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한국의 지리적 가치와 전략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내 지상군 주둔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발언은 미국의 국가 전략에서 한국이 자국 안보를 위한 일종의 군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은 이익을 말하고, 한국은 비용을 낸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그 자체로 놀랍지 않다. 이미 그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는 오랑캐로 제압한다)로 명칭된 고대 중국의 이민족 이용 정책을 국가 운영의 최우선 모멘텀으로 강화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만정책은 가장 극명하게 미국의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이번에는 중국을 중국인으로 제압한다는 흥미로운 실험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교활한 정책은 이이제이의 대상이 된 국가들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한반도는 그 중 대표적인 지역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변화를 유발한 국가는 일본인데, 미국의 개입 이후 일본은 뒤로 물러서 있고 한반도가 화약고로 전환된 것이 그 증명이다.

지나치게 오랜 세월 미국의 영향 하에 놓이다 보니, 한국인들의 뇌구조에는 미국의 의향에 순종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생각까지 이른 이들이 있다. 과거 김부식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에 맞춘 역사책을 기술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 시위에 성조기를 들고 나와 흔드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을 정도이니 말이다.

미국인들 일부가 이런 모습의 한국을 특수 목적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들에게 흥미로운 점은 그 특수 목적물이 스스로 비용까지 부담한다는 사실이다. 보수 우파 정치세력은 미국의 군사적 필요를, 한국 안보의 절대전제로 전환시켜 이를 국민에게 감정적으로 주입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자유는 미군과 함께 지켜진다", "안보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식의 수사를 반복하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확대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위에서 살펴본 맥락에서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 군사비를 명분으로 복지 예산을 축소하고, ‘작은 정부’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동시에, 이러한 논리는 진보 진영이 자주국방이나 복지 확대를 주장할 경우 '국가안보를 무너뜨리는 세력'으로 낙인찍는 효과적인 무기로도 작용한다.

적이 있어야 정당화되는 구조: 북한·중국을 ‘고정된 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정치 전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위협이 필요하다. 보수우파의 안보논리는 결국 '북한'과 '중국'이라는 적의 존재를 상수로 전제한다. 평화 무드나 외교적 타협이 부각되면 오히려 이들의 정당성은 약화된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악마화하고, 중국을 비문명국가처럼 묘사하는 담론이 반복적으로 동원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도 점차 극단적 반중 인식의 선도국으로 비쳐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 내 혐오적 반중 담론의 증가와 정부·언론의 방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는 특정 정당과 언론의 연합 전략이 더 이상 국내 정치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외교적 신뢰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진짜 '포퓰리즘'은 어디에 있는가?

이 상황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국민 복지 확대를 위한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매도되고, 반대로 미국의 군사전략을 위해 국가 예산을 지속 투입하는 것이 ‘애국’으로 포장되는 이 아이러니는 과연 정당한가?

국민의 세금이 노인, 아동, 장애인을 위한 복지에 쓰일 때는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 비판받고, 미국의 전략적 거점이 되기 위한 비용은 마치 존재의 이유처럼 수용되는 사회. 바로 이 점이 한국 민주주의와 자주권의 가장 근본적인 위협이다.

우리는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우리는 왜 항공모함이 되었는가? 그리고 그 항공모함 유지비를 왜 자발적으로 감당하는가?"

진짜 위험한 포퓰리즘은 외부의 적을 상수로 고정한 채, 내부의 삶과 권리를 희생시키는 전략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안보는 수단이지, 결코 존재 목적이 될 수 없다. 한국 보수우파는 ‘안보의 도구화’를 멈추고, 주권 국가로서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가장 비참한 것은 따로 있다

하지만 정말 불행한 것은, 한국인들은 한반도가 미국의 항공모함이라는 말을 들어도 반발하지 않는, 지능이 낮거나 혹은 충분히 세뇌된 민족이라는 일반화가 미국 대외 정책의 요소가 되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