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맥락을 보지 못했는가, 외면한 것인가
작성: 이준엽 | 게시: 2025년 5월 01일 | 수정: 2025년 5월 17일
정치적 발언과 사법 판단의 경계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공격과 방어의 연속이며, 특히 선거는 그 정점이다. 후보자들은 경쟁자의 비판에 대응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려 한다. 이러한 정치적 토론 속에서 나온 발언을 형사처벌로 다스리는 것은 단순히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다.
2025년 5월 17일,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백현동 관련 발언과 김문기 전 처장과의 관계에 대한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판단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해당 발언이 국회에서 이루어졌으므로 투표권자에게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발언은 야당의 지속적인 공세, 특히 국민의힘이 제공한 사진과 관련된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방어적 성격의 발언이었다. 이 대표가 먼저 거짓 정보를 유포해 유권자를 기만하려 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방어 취지의 발언을 ‘공표’로 간주한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정치적 토론의 장을 지나치게 침범한 사례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또 '대법관의 직책에 있는 이들의 지능이 겨우 이정도인가?'라는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위사실 공표 죄목의 한계
‘허위사실 공표’ 죄목은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허위 정보 유포를 통해 유권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명백할 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 속 즉각적인 반박이나 다소 부정확한 표현은 언론의 검증과 유권자의 비판적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상대의 공격에 대한 응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고의적 기만 의도를 입증하기 어렵다. 이를 형사처벌로 단죄하는 것은 유권자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법부가 진위 여부를 직접 결정하려는 위험한 전례를 남긴다.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의 영향
정치인의 발언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회는 정치적 표현을 위축시키고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제한한다. 정치인은 더 이상 법률 자문 없이 자유롭게 대중을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특히 사회적 약자나 정치 신인들에게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며, 정치적 다양성과 활력을 저해한다. 한국은 이미 ‘검찰공화국’, ‘변호사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만큼, 사법부의 지나친 개입은 정치적 토론의 공정성을 더욱 훼손할 우려가 있다.
사법부의 역할과 중립성에 대한 우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법률적 형식논리에 치우쳐 정치 발언의 맥락과 본질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발언에 대한 판단은 형사처벌이 아닌 투표와 정치적 책임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판결이 특정 정치적 의도나 균형 맞추기의 결과로 의심받지 않도록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한 가지 대안으로, 대법원 상고심 재판에 법관과 일반인을 동수로 배치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사법 판단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법부가 정치적 맥락을 외면한 채 형식적 판단에 치우쳤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토론을 통해 성장한다. 사법부는 이를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정치적 발언에 대한 사법적 개입의 경계를 재설정하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법원 내 성찰의 시간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