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세습과 남한 보수 정치의 위험한 공생 관계

작성: 이준엽 | 게시: 2024-07-31 | 수정: 2025-05-23

"북한은 세습 때마다 대형 도발을 해왔다. 김정일은 아웅산 테러를 일으켰고 김정은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저질렀다. 무력과 폭력으로 세습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이다. 남녀 차별이 극심한 북한에서 여성이 후계자 지위를 굳히려면 종전보다 더한 도발이 필요할 수도 있다. 김씨 정권이 가진 것은 폭력뿐이다. 김주애 후계 공식화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 24년 7월 3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가 보도한 북한 김정은의 딸 김주애의 후계 구도 관련 분석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는 무거운 함의를 담고 있다. 기사에서는 북한이 세습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력 도발을 반복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성인 김주애가 정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더 강력한 도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얼핏 이 보도는, 남한은 북한의 정치 일정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보도한 북한 김정은의 딸 김주애의 후계 구도 관련 분석에 조금만 시선을 달리 하면, 북측을 향해 "적절한 시점에 도발하라"고 부추기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성인 김주애가 정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더 강력한 도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침형 대목이 삽입될 수 없었다.

이 기사는 또 다른 중요한 정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남한 내부, 특히 보수 정치 진영이 '나쁜 북한'의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 긴장이 고조될수록 보수 정치의 정당성이 강화되는 구조는, 심각한 사회적 역설을 담고 있는 주제가 됐다.

남한의 극우 보수 진영에게 북한은 단순한 적대 국가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생존과 정권 재창출의 중요한 조건이자 도구다. 만약 북한이 체제를 개방하고 자유 선거를 도입한다면, 남한의 보수 진영은 그 존재 기반 중 상당 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악랄한 독재국'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그러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해 반복되는 도발과 충돌, 심지어 국민의 희생까지도 필요한 상황이 요구되는 것이다.

즉, 보수 정치가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국민의 '죽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언제나 힘없는 서민, 말단의 병사, 혹은 아무 잘못 없는 민간인이다.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이와 같은 구조를 반영한 듯한 인상을 준다.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장한 ‘정치적 기대’가 섞여 있고, 나아가 김주애 후계 구도를 계기로 어떤 형태의 무력 충돌이라도 일어나야 한다는 무언의 요청처럼 읽히기까지 한다. 이는 안보 불안을 조장함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국내 세력의 오랜 패턴과 맞닿아 있다.

현실은 이보다 더 불편하다. 북한이 오랜 세월 동안 폐쇄적인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해온 데는 내부 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 보수 세력의 존재와 행동이 외부 자극으로 작용하여 북한 정권에 정당화 논리를 제공해온 측면도 있다. 북한의 독재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외부 요인이 남한의 ‘정치적 필요’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미국과의 외교·안보 관계에서도 손해로 연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남한 보수의 안보 불안 심리를 역이용해 자국의 경제적 요구를 관철시킨 바 있다. 이는 '안보는 돈'이라는 미국의 냉혹한 현실 정치와, 이를 가능케 한 한국 보수 정치의 안보 프레임 의존이 맞물린 결과였다.

결국 문제는 본질적으로 남북 간의 구조적 대립이 아니라, 이를 자국 내 정치 이익에 활용하는 남한 보수 진영의 태도에 있다. 하지만 정치적 생존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도박판에 올리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끝없는 긴장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으려는 세력의 인질로 남아야 할까?

북한 정권의 세습은 분명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한 정치적 도발과 희생의 정당화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은 어떤 정치 이념이나 전략보다 우선이며, 이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안보인 것이지, 안보가 정치를 위해 존재할 수 없다.

아래에 과거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3인조로 된 북괴무장간첩이 침투, 지난 7일 충남 홍성군 관천읍 소암리 말봉산에서 부녀자 2명을 살해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무고한 주민 4명을 살해하고 달아나 군경 예비군은 이들 간첩이 산속으로 도주,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보고 도주로를 봉쇄, 수색 작전 중이다.

1978년 11월 27일 대간첩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일 오후 2시 반경, 충남 홍성군 광천읍 소암리 말봉산에서 3명의 부녀자 중 차태순(41), 이정순(30) 등 2명이 괴한에게 살해됐는데, 나머지 부녀자 1명의 신고에 따라 현장을 조사한 결과 피살된 부녀자들은 흉부와 복부를 대검으로 난자당하고 얼굴은 둔기로 맞는 등의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된 다음 현장에 매몰돼 있었다는 것이다.

수색반은 피살 현장 부근에서 은닉해 둔 북괴제 대검집 의복 압축 식량 카메라 망원렌즈 등 58종의 유기품을 습득했으며, 잔인한 살해 수법을 종합 분석한 결과 3인조로 된 북괴무장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즉시 작전을 전개, 도주한 북괴간첩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색 작전 중 지난 16일 오후 6시 반경 충남 공주군 사곡면 신영리 나상골 계곡에서 이 마을 민방위 대원 이재화(39)가, 23일 오후 6시경에는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양산리 야산에서 이 마을 송재섭(20)씨가 각각 또 살해 되어 흙과 나무잎으로 가려진 채 발견돼 희생자는 모두 4명이라고 대책본부는 밝혔다.

대간첩대책본부는 과학적 수사방법에 의해 조사한 결과 살해 수법이 동일하고 현장에서의 습득물이 북괴제인점 등으로 미루어 피살자는 모두 광천 지역에 침투한 북괴 3인조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틀 후 유력 신문 사설에는 이런 내용을 주제로 북괴간첩 이야기를 다뤘다.

"이들 살인 간첩들은 3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검거되지 않았는데...."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어려가지로 추측할 수 있겠으나, 우선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12월10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북괴는 이 시기를 침투의 호기로 삼고 게릴라 전법으로 민삼의 교란을 획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북한 무장공비들이 시골에 거주하는 부녀자들을 살해하는 임무를 띠고 남파됐다는 얘기다. 고도의 침투 훈련을 받은 공비들이, 부녀자 등을 살해 후, 근처에 많은 증거물을 묻어 두는 센스까지 갖췄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기사 발생 전에 다음과 같은 일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11월 7일 한미연합사 발족
11월 9일 북괴의 한미연합사 비난 성명
11월 20일 신문에는 미일중공과 안보협의체 모색이란 기사 등장
11월 28일 3인조 무장간첩 사건 보도

한미연합사 창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꿎은 민간인을 희생물로 삼은 의심이 가는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