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이'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작성: 이준엽 | 게시: 2025년 3월 17일 | 수정: 2025년 5월 17일

디자인의 법적 승리가 어떤 이익을 주나

삼성전자가 독일에서 중국 TCL을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번 소송은 TCL이 삼성의 TV 제품명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2024년 제기된 것으로, 독일 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며 TCL에 상표 사용 금지를 명령했다. 이 승리는 법적으로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보호한 성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관점에서 이번 승리는 득보다 실이 큰 선택으로 결론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국 기술 기업들은 급성장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TCL은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 12.5%로 삼성전자(18.7%)와 LG전자(16.3%)를 바짝 추격 중이다. 화웨이 역시 반도체와 통신 장비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며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표권 소송으로 중국 기업을 제압하려는 접근은 자기만족형 조치로 취급된다. 오히려 이번 승리는 중국 기업들의 분투를 자극하며,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경우가 적지 않다. 2010년대 중반, 애플은 중국 샤오미의 스마트폰 디자인이 자사 제품과 유사하다며 상표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애플은 일부 소송에서 승소했으나, 샤오미는 이후 독자적 디자인과 기술 혁신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며 2023년 기준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사로 성장했다. 이 사례는 상표권 소송이 경쟁사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상대의 기술 개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의 이번 소송 승리는 단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상징적 효과를 거두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표권의 법적 승리가 기술 경쟁력을 보장하거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삼성 따라쟁이 TCL을 각인시키는 전략이 훨씬 유리했다. 중국 기업들이 삼성의 기술뿐 아니라 디자인도 모방할 정도로, 삼성의 기술력과 디자인이 선도적이라는 점을 활용해 브랜드 우위를 공고히 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관료적 기업 문화

삼성전자의 관료적 판단 성향은, 대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국가 경제 운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2024년 기준, 삼성전자는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전기차, 배터리, 소프트웨어, 파운드리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은 한국 대기업의 주력 품목과 겹치는 내용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한국을 앞서 나가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경우 국가 경제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대만의 사례는 한국과 달랐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를 강화하며 산업 다각화를 이뤘다. 업계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대만은 한국의 수직적 계열화에 의한 삼성전자의 약진이 문제있다는 판단을 오래 전에 내렸다고 한다.

한국의 발전에서 교훈을 삼은 대만은 병렬적 협력 관계에 더 높은 가치를 뒀고, 그에 부응하듯 TSMC는 2024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했고, 협력 관계인 UMC, MediaTek, ASUSTek, Acer Inc 등도 동반 성장하며 대만 경제의 안정적 기반이 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소수 대기업에 의존하는 구조가 여전히 강하다. TV를 사려고 해도 삼성, 휴대폰을 사려고 해도 삼성, 노트북을 사려고 해도 삼성, 보험을 가입하려고 해도 삼성인 것은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은 것과 같은 위험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가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삼성전자의 상표권 소송 승리는 법적 성과와 자기 만족으로 기억될 수 있으나, 전략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큰 선택으로 평가된다.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법적 대응에 의존하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삼성의 기술과 디자인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해야 했다.

진정한 차별화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있게 고민했다면 이번 상표권 소송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삼성 수뇌부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삼성의 몰락'을 전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부도 삼성전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 첨단뿐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과 기업을 육성하여 안정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살펴야 한다.

가장 큰 시장을 옆에 두고 먼 곳에서만 답을 찾으려니, 그것이 대기업만 등장하는 이유인 것을 고민하는 정치가 탄생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