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국내 언론매체가 태국의 한 사원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을 ‘중국인 관광객 망신주기’ 기사로 포장해 보도했다. 제목은 “태국 유명 사원서 딸 용변·부모는 방치 '성토'…중국인 관광객?”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사에는 두 살가량의 여자아이 사진이 실렸고, 모자이크 처리로 생리현상을 일부 가린 채 공개되었다. 사실 여부보다 자극적인 연출이 우선이었다. 심지어 원 보도가 출처인 태국 언론보다 이를 받아쓴 한국 언론의 선정주의와 악의성이 더 짙게 묻어났다.
2025년 5월 23일 이 사건 내용을 정리하며 다시 살펴보니, 일부 언론사는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제목도, 사진도, 기사 내용도 모두 사라졌다. 그와 관련한 언론사의 공식 해명은 없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가 기사를 삭제한 것은, 그 보도가 애초에 부끄러운 것이었으며, 스스로도 그 잘못을 감추고 싶어 한다는 점을 들킨 것이다.
그때의 보도에서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모든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단지 두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라는 점이다. 유아의 생리적 실수는 누구나 겪는 보편적 경험이다. 특히 태국처럼 물갈이에 따른 급배탈이 발생하는 곳에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사정을 누구나 아는데, 그 실수 하나로 전 세계 수백만 명 앞에 얼굴을 드러내게 만드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집단 괴롭힘이다.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과정이 ‘중국인 혐오’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몇몇 보수우파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사한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중국 유학생 김치 거부 논란’이다. 2021년, 국내 대학 식당에서 김치를 먹지 않는 중국 유학생의 모습을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뜨리며, ‘김치도 안 먹는 무례한 외국인’으로 몰아간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입맛 차이였을 뿐이고, 유학생 당사자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조롱과 혐오를 감내해야 했다. 정작 어떤 범죄나 무례한 행동도 없었지만, 언론은 그들을 ‘공공의 조롱거리’로 소비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언론은 이렇게까지 특정 국가 출신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가? 그것은 클릭 수와 광고 수익, 그리고 혐오의 대중성에 기대려는 게으르고 위험한 접근 때문이다. 반중(反中) 정서가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는 흐름 속에서, 언론은 ‘중국인 혐오’를 자극하는 기사 하나로 수천 수만의 트래픽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실의 비중은 줄고, 조롱의 농도만 짙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언론 자체의 신뢰를 훼손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잠식시킨다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실수한 사건 하나를 전 세계 앞에 낱낱이 공개하고, 특정 국적이라는 이유로 그 가족 전체를 조롱거리에 올리는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그다음은 누구든 언론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약자를 향한 조롱과 망신주기의 면죄부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말하기 위한 권리인 동시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자제하는 성찰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은 지금, 그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기자는 보도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더 높은 도덕성과 책임을 요구받는다. 아이의 생리적 실수 하나를 갖고 특정 국적을 지목하며 혐오를 부추기는 그 칼날은, 결국 국민의 목을 겨누는 칼날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혐오로부터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자제력이 필요하다. 🏠
© 2022 북두문학.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