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역설 – 음식문화 강국의 식탁이 위태롭다

작성: 이준엽 | 게시: 2025년 5월 28일

김치는 단순한 발효 저장식품이 아니다. 수천 년간 내려온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음식이며, 김장을 매개한 공동체의 나눔 문화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이 자부심 가득한 음식이 정작 한국인의 식탁에서는 귀해지고 있다.

5월 19일 SBS가 보도한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김치 수입액은 역대 최고치인 4,756만 달러(670억 원)에 달했고, 수입량은 8,000톤을 넘어섰다. 금액으로는 전년 동기 대비 17%의 상승율이고 중량으로는 10%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수출도 늘어 작년 2,300억 원 규모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수입이 월등히 많은 김치 무역 적자국이 한국의 현주소다.

그런데 김치 수출입 통계에서의 불편함은 단순한 무역의 문제가 아니다. 김치의 엇갈림이 한국 사회의 불균형과 서민 경제의 붕괴를 고스란히 웅변하기 때문이다. 국내산 김치는 높은 품질과 좋은 재료 덕에 외국 소비자에게는 프리미엄 상품으로 팔린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는 점점 그 값을 감당하지 못한다. 결국 김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이 받는 월급으로, 자기 손으로 담근 김치를 사 먹을 수 없는 역설적 상황이 지금 한국의 경제 현실이다.

포기김치 한 통

포기김치 한 통 © Gemini

서울 불광동에서 국내산 김치로 만든 김치볶음밥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 모 씨의 가장 큰 고민은, 고객들이 주문 요청란에 “반찬으로 먹을 김치 좀 따로 보내주세요!”라는 문구를 써 놓았을 때라고 한다. 그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2024년 기준으로 국산 김치를 만드는 비용이 삼겹살에 버금한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몰라 벌어지는 해프닝인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허무는 것이라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김치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는 국가의 지나친 생활규제로 김치를 집에서 담그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김치 담그는 과정에서 부산물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데, 각 부산물 처리를 별도 공부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김치를 만드는 데 장벽이 하나 생긴 탓이다. 게다가 최근 지어진 비좁은 서민 주거 환경에서는 배추와 채소를 다듬고 절이고 무치는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각 가정의 김치 냉장고 속에는 마트에서 사 온 봉다리 김치가 담기는 게 일반화됐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소득 수준이 낮은 도시의 가구에서는 국산 김치를 사 먹기가 어려워졌으며,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도 어지간한 배포와 거주 여건을 만족해야 가능한 일이 됐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국산 김치가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단순한 소비 패턴의 변화가 아니라, 전통의 위기를 넘어선 정체성의 실종을 의미한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식당에서 "이모! 여기 김치 한 접시 더요."라는 한국적 문화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중국산 김치가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세계의 유사 사례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는 고급 아라비카 커피를 수출하지만, 자국민은 저렴한 인스턴트 커피를 소비한다. 노르웨이[1]연어와 대구를 수출하지만, 자국민은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인해 저렴한 냉동 연어, 어묵 등을 사 먹는다. 뉴질랜드양고기 수출국이지만, 뉴질랜드인에게 양고기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사치스러운 요리의 재료가 됐다.

한국의 김치는 가공식품이라 이들과 동일하지 않지만, 국산 김치의 가격이 소득 수준 대비 소비력을 추월하면서, 서민들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변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김치 시장이 값 싼 중국산으로 채워지는 것은 그 현실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김치 산업이 수출 경쟁력을 얻는 비율만큼, 보통사람들의 식생활은 궁핍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수출용 김치는 수입국의 입맛에 맞게 조절되어 한국인의 입맛과 다르다. 오히려 중국산 김치가 한국인의 입맛에 더 맞는 현실이 됐다. 이는 국산 김치의 다양한 맛이 우리 문화에서 퇴장하고 있음을 말한다. 젊은 세대는 중국산 공장 김치 맛을 한국의 맛으로 인식하고, 청소년들은 어머니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자라고 있다.

콜롬비아의 커피 수출은 다른 작물로 대체할 수 있고, 노르웨이의 연어는 그 수를 늘릴 수 있으며, 뉴질랜드인의 양고기는 그렇게 자주 먹어야 하는 음식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김치는 상품인 동시에 정체성이라는 점을 최우선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

이는 김치의 위기를 경제학적 판단은 물론 문화사회학적 접근도 필요함을 의미한다. 전통 식문화의 획일화와 단절은 시장 논리가 아닌 정체성과 공동체 가치의 퇴보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김치는 더 이상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는 문화적 거울인 것이다.

정체성의 위기

최근 북두문학이 실시한 AI 분석에 따르면, AI 고도화 시대에 한국의 적정 인구는 2,500만 명 이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은 AI 시스템 도입에 거부감이 적어, 가장 빠르게 정체성 상실 위험이 큰 국가로 꼽힌다. 이는 일반 국민이 김치를 만들 수도 없고, 국산 김치를 사 먹을 수도 없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과학적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다.

김치가 식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한국인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경제 문제를 현재의 수출 지향 일방향 구도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잘못 설정된 국가 발전 방향이, 국가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안목도 가져야 한다. 한민족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북한이나 연변조선족에게 넘겨주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늦추고,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인 것이다.

지금 한국의 김치문화는 생산국 역설(producer's paradox)[2]이라는 경제학적 설명을 넘어, 김치의 역설(kimchi paradox)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결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유네스코에 등록하면 끝나는 사무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전통 문화를 지키는 것이 가장 수준 높은 세계화라는 사실을 모두가 되새기길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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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노르웨이는 세계적인 연어와 대구 등 해산물 수출국으로, 노르웨이 해산물 수출은 국가 경제에서 석유 및 가스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연어는 노르웨이 전체 해산물 수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수출 품목이다. 그러나 노르웨이 자국민의 해산물 소비량은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2년에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감소의 주요 원인은 해산물 가격 상승으로 꼽힌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해산물이 수출되어 높은 가격에 팔리면서, 노르웨이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져 일반 소비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 내에서는 고품질의 신선한 연어 소비가 줄어든 반면, 냉동 연어, 어묵, 피시볼, 어묵 스틱 등 비교적 저렴한 해산물 가공품의 판매가 증가했다.

  2. '생산국 역설(producer's paradox)'은 생산국에서 최고급 제품은 수출하고, 자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소비가 적은 제품을 소비하는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