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만을 위한 공론장: 필터 버블, 그리고 '편들기'의 경제학

작성: 이준엽 | 게시:2025년 5월 20일

지금의 온라인 세상은 겉보기에 다채롭지만, 실제로는 놀라울 만큼 닫혀 있다. 우리는 유튜브, 커뮤니티, 뉴스 피드를 통해 정보를 소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새로운 관점을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듣고 보고 싶은 정보만 전달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이제 많은 이들이 실감하는 구조적 문제다. 이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더 극단화되는 사회적 태도, 그리고 '편들기'가 돈이 되는 미디어 구조와 맞물려 있다. 알고리즘 자체가 중립을 기반으로 짜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현상이 온라인 시대만의 산물일까? 그렇지 않다. 1980~90년대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특정 신문만 보는 것이 정체성이었다. 예컨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조선일보가 아닌 다른 신문이 식당이나 다방의 테이블에 놓여 있으면, 다른 생각을 가진 '의심'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는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생명'을 좌우하는 일로 확장됐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생존이 위협받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온라인 폭력과 언어 살인은 그 과거를 디지털 방식으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의 필터 버블은 그 원인이 조금 더 정교하다. 유튜브나 SNS 플랫폼은 사용자의 클릭 패턴과 시청 시간 등을 바탕으로 ‘더 보고 싶어 할’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런 알고리즘이 중립적일 수 없는 것이다.

네트워크 유지에 비용을 지불하는 이들은 이용자의 선호를 기반으로 오래 ‘머물게’ 만들어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결과는 분명하다. 보수는 보수 유튜브만, 진보는 진보 유튜브만 본다. 양 진영의 커뮤니티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 그들 사이의 대화는 단절됐다. 그리고 양쪽 모두, ‘양비론자’나 ‘중립 지향자’를 가장 먼저 배척한다. “우리 편도 비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커뮤니티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이 구조는 경제적으로도 악순환을 만든다. ‘양쪽을 비판하는 균형 잡힌 목소리’는 도리어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조회수도, 광고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특정 진영을 열렬히 지지하는 콘텐츠는 '확실한 팬층'이 있어 클릭과 후원이 이어진다.

결국 창작자 입장에서는 살기 위해 한쪽을 편들 수밖에 없다. 미디어 시장에서 중립은 이상적이지만, 수익 구조에서는 철저히 비효율적인 것이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이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가당찮아 보이는 접근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단기간 내 해법은 요원하다.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머무름’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고, 그러자면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비판적 사고나 상대 진영의 논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자기 비용을 요구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의견’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싸우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는 더 이상 취향이나 논리가 아니라, 소속의 표지이고 진영의 배타적 인증 수단이 되었다. 그 안에서 균형을 외치는 이들은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며, 때로는 생계조차 위협받는 구조다.

이러한 편들기 현상을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문제로 보는 것은 실수다. 편향은 인간이 만들어 낸 구조이자, 우리가 선택한 악성 문화다. 바꾸기 위해선 결국 ‘정보 소비자’인 우리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편들지 않으면 적이다”라는 프레임부터 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