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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가마


    제 5호

제사와 한글
- 그 기막힌 악연에 대해 -


동북아시아는 자연 지형 형태를 기반으로 중일한(中日韓) 삼국으로 나뉘어 역사를 만들었지만, 그 근본적인 사고에서는 황하문명을 기반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형식의 의식(意識) 세계를 갖추고 있다.

과거와 연계된 글에서는 중일한(中日韓)이라는 표현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바른 접근법이다.

우리는 그러한 의식 세계 속에 다른 문명권과 구별되는 두 가지 핵심적인 공통 분모를 알고 있다. 하나는 벼농사를 기반으로 발전한 생활 문화, 다른 하나는 한자를 기반으로 발전한 주역학 중심의 정신문화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공통점이 응집된 형태가 제사로 요약된다. 제사의 전통은 황하문명을 기반으로 탄생한 동양 사회의 전제군주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근세사 격변의 시대에 중국은 공산주의를 선택하며 전제 군주 시대의 역사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에 들어갔고, 같은 시기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 정책에 편승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자국 문화를 폄훼하는 풍조가 저변에 뿌리내리게 됐다.

덕분에 당시의 세계사 속에서, 자국 문화를 깔보는 유일한 민족이 한국인이라는 평가로 이어진 적도 있다. 일본의 통치 하에서 지식인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도 인의 핏줄이라는 점을 스스로 멸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고 그걸 앞장서 공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의 식민 정책을 연구한 일본의 정교하고 지능적인 식민 정책 탓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세계 역사 속에서 자신의 국가를 '실물 화폐'를 받고 팔아 넘긴 유일한 사례는 비웃음을 살 민족성의 일부이기도 했다. 만약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은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을 것이다. 그것은 지식인 중심으로 일본 문화에 동화된 형태였기 때문이다. 먼 훗날 미국이 한국을 독립시키려 했어도, 그 치하에서 출세한 반도인들이 반대했을 게 자명하다.

일본이 독일의 사주를 받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과오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불행 중 다행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은 궁극적인 일본의 야욕 중에 역사 왜곡이 있었고, 동아시아 문화의 원류인 중국은 전통을 파훼하는 공산주의를 선택했던 때문이다.

그때 분명하게도 황하문명에서 비롯된 동아시아 역사의 본류는 옅어지거나 소멸 단계였고, 일본 중심으로 아시아의 가치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었다. 묘한 것은 그 순간 또 다른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된 점이다.

한국 전쟁 후, 북한과 무조건 반대로만 하는 대결 구도가 정착되면서, 남한에는 일제에 의해 통제되고 금지됐던 우리 역사와 전통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그것은 조상에 대한 제사 문화가 한국전쟁 후 가장 왕성하게 퍼졌던 것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때나 일제 강점기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간의 제사가 일반화됐고, 1960년대에는 제사 방식을 놓고 집안 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게 흔한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심각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한국에 파견된 기독교 선교사들이다.

사단의 시작은, 그들이 미국 정부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계통을 가졌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영향력은 다방면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들 선교사 중심의 문화 침투는 한국 사회에 치명적인 부분으로 작용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밀가루 무상 배급을 통한 장로 형 기독교의 점령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지금 한국에 뿌리내린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 갈등을 자양분으로 삼는 '기독민주주의'다.

그들 기독민주주의자들의 업적 중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KBS 인기 드라마 '전설의 고향' 폐지 사건이다. 그들은 전설의 고향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자, 공중파 드라마가 미신을 조장한다는 구실을 앞세워 연일 항의를 하는 등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드라마는 폐지됐다.

그 후 기독교 세력은 방송국과 언론사 설립에 나섰고, 사회 전반과 정치에 자신들의 사상을 침투시켜 나갔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동양 삼국 중 한국만이 황하 문명권에서 배타적인 세력으로 자리매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그들 기독민주주의 자들의 작업 중 가장 혁혁한 전과는 역시 한문 교육 폐지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탓에 그들의 간섭은 한국의 정신세계 본류를 휘젓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국의 밀가루를 배경으로 세력을 넓힌 기독교의 끈질긴 작업은, 국정 교과서 폐지라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되는 전무후무한 성과로 연결됐다.

당시 기독민주주의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의 교과목에 포함된 한문 과목이나 도덕 교과목이 이스라엘 역사를 기반한 바이블의 기르침과 상충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한문 과목과 도덕 과목의 핵심은 한자(漢字)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한글 사용 확대를 외친 게 바로 그들 기독민주주의 세력들이었다. 하지만 남한식 한글 정책만으로는 의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어, 한자가 담당하던 부분을 영어로 대체하게 됐다.

이는 남한식 한글 체계가 가진 난제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의식'이라는 단어를 보자. 첫 번째 의식(意識:consciousness)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을 말하고, 두 번째 의식(意識:consciousness)은 '사회적ㆍ역사적으로 형성되는 사물이나 일에 대한 개인적ㆍ집단적 감정이나 견해, 사상.'을 말한다. 세 번째 의식(儀式:ceremony)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를 말하며, 네 번째 의식(衣食)은 '의복과 음식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의식(倚息:gasping)은 '숨이 차서 몸을 무엇에 기대고 숨 쉬는 일. 또는 그렇게 쉬는 숨.'을 말한다.

문맥을 통한 구분은 가능하지만, 한자 혹은 영어가 병기돼야 뜻의 전달이 원만해지는 단어가 부지기수다. 북한식으로 한글 신조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남한식 한글 체계 고집에서는 어떤 외국어든 보조 역할이 필요하다.

이렇게 현재의 한국이 한문 사용자들을 비난하고, 한글과 영어 잡탕 문화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기독민주주의자들의 전통문화 말살 작업이 거든 성공에 기인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한글을 체계적으로 지켜낸 이들 중에 외국인 선교사가 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엘리트 그룹 주류는, 내 눈에 보이는 건 일본뿐이라는 시류에 부합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부분은 과거 일제강점기 조선인 엘리트 그룹의 직계 후손들이, 현 시점의 언론을 통해서도 직접 증언한 내용이다. 태어나 보니 한반도가 일본인데, 당연히 일본에 충성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가 그 정점이다.

그러한 시류관으로 조선인 친일 세력들은 총독부에 잘 보이는 게 인생의 최고 목표였다. 당연히 조선의 지식인 그룹에 한글은 열등한 언어로 취급됐지만, 외국인 선교사들은 오히려 한글 보급에 집중했다. 한국에서의 선교 사업은 자신의 일생을 바친 귀중한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1800년대 후반에 공들여 만들고 보급한 한글 바이블이 있었다. 이제 일본의 통치하에서 바이블을 일본어로 바꿔 보급하려면, 먼저 자신들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어를 마스터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다. 바뀐 시류에 금새 자신의 정체성을 맞추는 반도의 친일 세력처럼, 자신들도 한글을 버리고 일본어를 배우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예상됐다. 일본어를 익힌 조선인들은 결국 일본 신사를 바탕으로 한 천황 중심의 세계관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동아시아 전체에서 기독교의 소멸이나 마찬가지인 결과였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한글을 지켜낸 측면으로만 본다면 기독교의 공로가 보이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러한 내용이 순수하게 한글을 지켜내기 위한 의지에서 출발은 아니었다는 것도 들여다 볼 내용이다.

그때의 기독교 세력과 전후 미국의 밀가루를 배경으로 등장한 기독교 세력은 서로 다른 그룹이다. 즉 일제강점기 한글을 지켜낸 기독교가 지금의 기독 민주주의로 '내리물림'된 것은 아니다.

또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은, 당시 동양의 강대국인 일본에 대한 본능적인 반발심이 있었다. 그들 선교사가 처음 발을 디딘 땅은 조선이었고 곧 대한제국으로 바뀌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바뀐 세상이다.

그들은 기독교인 이전에 백인이었고, 자신들이 유색 인종인 일본인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에 기본적인 반발심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모국도 식민지 확장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탈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었다. 유일하게 합법적인 반발이 기독교 사수였던 셈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한글은 선교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구였다.

패망한 일본이 물러난 뒤의 한반도는 미국의 뒷배를 업은 기독민주주의 기반의 선교사들 천하였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과제는 과거보다 더 보편화된 각 가정의 제사(祭祀) 문제였다.

祭祀(제사)의 어원

제사라는 용어는 3,400년 전 황하 유역에 자리 잡았던 은나라 갑골문에 처음 등장했다. 상형문자 해석으로 제사제(祭)는 '肉(고기)을 又(손)에 받쳐 들고 示(제단)에 정성스럽게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제사 사(祀)는 사람이 '示(제단) 앞에 巳(굽히고) 앉은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부분 제사의 어원 접근에는 예전에 공개된 필자의 다른 글을 일부 인용하고 있다.

다른 해석은 표의문자 해석으로 '祭(제)'의 의미는 과거의 이루지 못한 일을 내가 잇는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祀(사)'는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롭게 나듯 나 역시 거듭 태어나 올바로 살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표의문 해석이나 상형문 해석 모두 지금까지 이어진 제사의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제사의 기본 형식은 처음 발생했을 당시와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다. 당시와 차이 나게 달라진 부분은 제사 행위의 주체다.

제사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 제를 올리는 것은 제사장을 비롯한 극히 일부의 특권이었지만, 문자를 기반한 문명이 발전하면서 제사의 저변은 확장되기 시작했고, 시대를 거듭나면서는 인륜을 기반한 질서에서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제사 행위가 문명의 발상지 모두에서 각각의 형태로 의식(儀式)된 것으로 볼 때, 제사는 문명의 탄생과 더불어 자연발생적인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인류가 문명을 탄생시킨 후 가장 늦게 등장한 제사의 계통인 기독교에서도, 십자가 앞에서 간절히 기도 올리는 모습은 제사의 상형문자 유래와 비교할 때 100% 닮은꼴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가 앞선 신앙들의 신화적 접근에서 장점만을 가져오고, 이전보다 보편화된 문자를 통해 전파력이라는 새로운 속성을 추가한 것이 성공의 발판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소는 종교의 탄생이 인류 문명의 자연발생적인 천부 신앙 요소에 있음을 간파한 점이다.

결국 그 주장이 뭐였건, 종교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에 공통된 형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사의 형식에서 또 달라진 점은, 과거에 준비되던 피의 제물이 후에 화폐로 진설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목사나 신부라는 매개체는 가장 진화된 제사장의 모습인 동시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제사 의식체 부활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제사장이 인정되는 집합은 그만큼 강력한 공동체가 되는데, 지금의 한국 교회들을 보면 딱 들어맞는다.

이러한 제사장 중심의 기독교 전파에서, 전쟁 후의 한국처럼 어떤 종교적 구심점 없이 집집마다 제사를 모시는 유교적 사회는 격파하기 쉬운 구조였다.

반면에 기독교처럼 제사장의 지위가 인정되는 일본이나 태국 같은 경우에는, 다른 제복을 걸친 목사나 신부가 그 제사장의 지위를 빼앗는 게 불가능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일본이나 태국에 기독교가 침투하지 못한 이유로도 설명된다.

그렇지만, 한국의 유교적 사회가 격파하기 쉬운 구조이긴 해도, 제사를 악습으로 모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제사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결국 한국형 기독교의 형식에서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종류별 기도를 빌미로 교회에 돈을 가져오게 하고 납부한 돈을 족쇄로 엮는 구조에서, 제사가 미신적이고 또 낭비적인 요소라는 점을 부각하며 비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제사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오히려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는 언론사와 방송국이 있었다.

과거 한자 교과목을 없애는 데 사용됐던 '한글 사용 운동'과 같은 우회 전략으로 안성맞춤인 소재가 있었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인 내용은 바로 '명절 스트레스'라는 주제였다. 그것은 제사 행위를 사회적 갈등으로 전환한 대성공 드라마였다.

명절에 전을 부치는 것은 타파해야 할 악습의 일부이고, 전 부칠 시간에 이스라엘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일거양득의 전술이었다.

명절 스트레스 전략은 고부 갈등을 기본으로 부부 갈등, 형제 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나아가 사회 전반에서 서로를 백안시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러한 갈등 사회는 우울증과 같은 사회적 고민을 양산하고 나홀로 거주자들을 증가시켰다.

그런데 지나친 두뇌 플레이를 했던 것 같다.

손쉬운 사업의 방식은 수많은 기독교 분파 탄생으로 이어졌고, 그들 모두가 대형 제단을 쌓고 성공한 모습을 뽐내야 하는 과정이 시작된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굴레는 그 문제를 적정한 선에서 멈추게 할 브레이크를 갖추지 못했다. 이제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초적 명제에서 출발한 사회 갈등 소재는, 제사의 소멸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끝나지 않고, 아예 사회 구조를 기형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유익했던 사회 갈등 구조는 이제 '가족 해체'로 이어졌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가진 사회를 탄생시켰다. 더 나아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인구 감소 국가라는 성적표를 안겨 줬으며, '명절 스트레스' 도입으로 희열을 맛본 교회 자신도 이제 소멸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엊그제 강남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 당선 사례가 화제에 올랐다.

어느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많은 한자를 사용해 당선 사례를 썼고, 다수의 젊은이들이 한자 사용을 비난하는 내용을 소개한 기사였다.

어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자 교육을 유지했다면, 지금 한국인 대부분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소통할 때 한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또 한자로 된 그들의 서적을 읽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거기에 영어까지 공부한 이들은 최소한 한자문화권과 영어문화권 사람들 모두와 소통이 가능하고, 그 숫자는 지구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 역시 3개 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 좋은 기회를 이스라엘 역사를 숭상하기 위해 버린 게 한국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게 비난 받을 일인데 영어는 왜 배우고 있을까?

현재 일본과 중국은 한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국가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동원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보다 현명한 젊은이들이 이끌어 가길 바란다. 교활한 꾀로 남녀갈등이나 유발하는 이들이 지도자 행세를 하게 놔둔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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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캄프


나는 대한민국 유수의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꽤 재미있는 기사들을 만들어 대한민국 여론의 방향을 조정하는 재미를 즐겼다. 그건 나만의 취미생활이 아니다. 우리 신문사의 여러 동료가 같은 게임을 한다.

금
photo:Mohamed_hassan/pixabay

입사 1년 뒤 수습 딱지를 뗀 후, 나의 첫 기사는 당시 화제의 중심에 있던 신사업니넜던 배달앱 관련 기사였다.

선배들에게 배운대로 존재하지 않는 '방학동 김 씨'를 만들어, 배달앱 가짜 리뷰를 써주고 한 건에 십만 원을 받았다는 기사를 그럴듯하게 꾸며냈더니, 금세 다른 언론사에서 베껴 쓰는 걸 목도했다.

일부 언론사는 더 나아가 같은 방향의 새로운 창작 기사를 만들어 냈는데, 모 언론사에서는 한 건당 삼십만 원을 받는 것으로 기사를 내, 나를 기함하게 하기도 했다.

리뷰 33개를 써주면 일천만 원의 목돈이 들어온다는 기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써 재끼고, 인터넷 포털은 그런 기사를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해 줬다.

물론 해당 기사의 원조인 내가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는 않지만, 리뷰 하나에 삼십만 원을 받는다고 쓴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자, 국민들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헐뜯고 싸우기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은 또 있었다. 내가 기사를 창작한 이후 두어 달 뒤부터 실제로 리뷰를 대행해 준다는 업체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리뷰 하나 써주고 십만 ~ 삼십만 원을 받는다니, 그런 신세계를 어찌 방관하겠는가 말이다.

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또 다른 기사를 창작했다.

이번에는 응암동에 사는 최 씨가 주문했던 음식에 이물질이 나와 업소에 전화했더니, 업주의 폭언이 있었다는 기사를 만들었다.

우리 신문사 인지도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어, 곧 중소 인터넷 신문들의 받아쓰기 기사가 만들어지고, 역시 꽤 많은 언론사에서는 새로운 창작 기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기자들에게도 배달앱 갈등 소재는 블루오션이었다. 마땅하게 채울 기삿거리가 없을 때는 배달앱 기사 하나 만들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사실은 그만인 정도가 아니라 만드는 족족 각종 커뮤니티와 포털의 인기 뉴스가 됐고, 신문사는 클릭률 향상으로 이득을 봤다.

회사에서도 나의 소비자 감성을 파고 든 기사 생산 방식을 칭찬해 줬고, 동료 기자들도 눈에 불을 켜고 갈등 조장 기사를 창작하기에 바빠졌다.

내가 이런 기사를 창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청O식당' 탓이다. 그 식당은 지역에서 꽤 유명한 배달 맛집인데, 나의 작은 요청 사항을 무시했었다.

내가 원한 서비스는 겨우 '청양고추 몇 개 추가'였는데, 업주는 그걸 무시했다. 물론 업주가 나의 직장이 'OO 일보'인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나의 요청을 무시한 식당에 대한 불쾌한 잔상은 오랫동안 남았고, 결국은 배달앱 식당을 소재로 한 기사 창작으로 이어졌다.

올바른 일은 아니지만,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기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중압감은 나를 악마의 유혹 속으로 인도했다. 결국 내가 생활 속에서 가장 익숙하게 접했던 분야 중, 하필 나쁜 기억이 남아 있던 배달앱 식당이 타깃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실 어느 분야든, 일부의 일탈은 사회 전반 모든 요소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문제는 배달앱 식당뿐 아니라, 업종 불문하고 모든 분야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중에 집중적으로 한 분야의 비판 기사를 생산하는 게 기자의 특권인 셈이다. 나 역시 누군가를 하나 찍어서 공격하는 것에 특화된 인격체로, 종종 이런 일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국민들은 문자 해독 능력을 가진 단순한 생물체이기 때문에, 신문사에서 추려낸 기사가 마치 사회 전체의 문제인 듯이 오해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회에는 당연히 몇 명의 악질 업주가 있고, 또 그에 비례하는 악질 고객이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신문사의 구조는 보통 사람이 극히 일부고 다수가 이기적인 자들이다. 교활하고 사악한 짓에 염증을 느낀 일부의 착한 놈들은 곧 회사를 그만두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에 전설적인 여기자가 있었다.

그 여기자가 작업한 내용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명절 스트레스' 기사다. 물론 본인이 전 부치는 걸 싫어해서 만든 기사다. 그런데 그게 대박으로 연결됐다.

지금 그 기자는 퇴사한 지 오래지만, 이후의 신입 여기자들 모두가 그 기사를 배경으로 새로운 창작 기사들을 무수히 쏟아 내며, 오늘의 사회적 갈등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지독한 사회악인데, 기자의 본질은 사회 갈등을 만들어야 안정적인 수입이 유지되는 구조다. 갈등이 없다면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게 생리적인 현상일 정도로 자연스러운 직종이다.

또 한 명의 전설적인 기자는 불법주차 시민 신고 제도를 만든 최 OO이다.

최 기자는 아예 처음부터 결과를 공언했다.

"좌파들은 신고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불법 주차를 집중적으로 보도해 여론을 만들고, 시민 신고 제도가 가능하게 하겠다. 그리고 이 목표 달성은 2년으로 잡는다."

그 후 실제로 불법주차 시민 신고 제도가 만들어졌다. 국민들이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 셈이다. 이 작업의 성공은 우리에게 많은 기사 소재를 안겨줬다.

과거에는 개인이 대기업을 고발하는 게 일반적인 행태였지만, 지금은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감시하며 고발하고 비난하는 사회가 됐다. 보도할 기사 소재가 넘쳐나니, 최근에는 AI를 동원해 구독자 맞춤형 기사를 창작해도 될 정도로 갈등이 다양화됐다.

한국처럼 땅은 좁고 인구는 많고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불법 주차가 용인되는 것이, 사회가 기름칠한 듯 잘 흘러가는 시스템이다.

그건 기자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분야다. 그렇지만 나의 출세를 위한 목표에 필요악인 자극적인 기사와, 샘처럼 솟아나는 뉴스 소재를 위해서는 사회 갈등이 필수적이다. 만약 모두가 양보하고 착하게 산다면, 기자나 언론사 입장에서는 암흑인 세상이다.

사실 보도는 겉치레고, 실상은 소비자가 욕망하는 기사를 만든다는 신문사의 숨겨진 강령은, 사회를 더욱 각박하고 야멸차게 만들어야 굴러가는 구조다. 더구나 이제 고도의 인터넷 사회가 된 후라 인기 없는 기사 양산은 '기자의 사직'으로 이어진다.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갈등 사회는 언론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내용이다. 또 정치인들도 이런 사회를 반긴다.

그것은 고양이와 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착한 인간이고, 돼지와 닭, 소를 도살해 먹는 것도 모범 인간이 되는 모순적 사회 합리화가 만든 예정된 결과다.

오늘도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착한 시민으로서, 더불어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 갈등을 찾아 뛰어다닌다. 어쩌면 이 글을 본 당신이 다음 갈등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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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까리의 보고


5월 19일 연합뉴스TV 기사에 한국의 외무장관이 방중(訪中)했던 결과를 미국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면서도, 이미 수십 년째 익숙한 내용이다. 새삼 문제점인 양 거론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하나의 사건이 떠올라 글을 만들게 됐다.

1983년 9월 1일 미국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오던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린 근처에서 소련 공군의 수호이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했다.

그때 사건에서 설명되지 않은 여러 의문점이 있어, 일부는 음모론을 대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칼기 피격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한항공 비행기가 소련 영공에 침입했고, 소련 전투기가 요격을 위해 출격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소련 측은 한국에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아무런 연락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것도 아닌 민간 항공기를 격추할 정도면, 관련 상대국에 영공 침범에 대한 진실성을 확인하는 등의 사전 접촉이 있기 마련이다. 또 그 당시 소련과 한국 사이에 감정적으로 상대국을 자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칼기가 격추된 이유는 단 하나, 한국은 미국이 정한 외교 규칙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과 소련 간에 직접 외교 채널이 존재했다면, 대한항공 여객기는 절대 격추되지 않았다.

중국은 누구와 얘기했던 것일까?

한국 외교부 장관이 (드문 행사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무슨 회담을 했는지는 우리가 한국인이라 알지 못한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내용의 보고는 미국에서 받기 때문이다.

하찮은 한국인들은,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회담한 내용을 미국에 보고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역할이 종료된다.

그런데 한국인들보다 좀 더 가관이 되는 것은 중국의 입장이다.

분명히 한국 국적을 달고 와 회담하는 데, 이 친구가 회담이 끝나면 미국에 보고할 내용을 염두에 두고 대답해야 하는 점에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리인을 보내지 말고 미국이 직접 얘기하면 좋겠지만, 미국으로서도 하부 조직을 부리는 것에 최소한의 자존심은 세워줘야 하니, 한국이 중국과의 외교부 장관 회담을 여는 것을 허락하게 된 사정이다.

중국으로서는 모든 사안에 대해 미국의 허락을 구하는 한국을 상대하는 게 매우 피곤한 의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중국으로서 더욱 갑갑한 부분은 따로 있다.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해서는 하부 조직을 자임하면서, 중국을 상대로는 대등한 관계를 외치는 부분이다.

그렇게 대등한 관계를 외치려면 외교를 독자적으로 행사해야 하는데, 한국의 외교나 군사는 미국의 의중을 살피거나 지시를 받으니, 도무지 자기주장이 뭔지 알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게 한국의 외교다.

유일하게 냈던 목소리인 '중국과 멀어지겠다."는 내용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에 이쁨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한국의 외교는 무엇을 목적하는가?

특정 국가와 멀어지겠다는 말을 공표하는 게 외교라고 생각했다면, 정권을 내놓고 물러나야 한다.

외교는 두 나라가 전쟁 중이어도 만나서 현안을 타협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외교가 이웃을 상대로 '너와 가깝게 지내지 않겠다.'라고 공표하는 수준일까?

그건 1983년 대한항공 칼기 피격에서도 배운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외교를 거절하고 대립만 부각한 결과의 또 다른 예는 천안함 피격이다. 그때의 문제도 위정자들이 입을 잘못 놀린 탓인데, 그 잘못을 옳게 비판하지 않으니, 최근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조짐이 확장되고 있다.

또 어떤 희생으로 연결될지 모르겠지만, 세 치뿐인 혀를 이용해 자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치는 지양돼야 하고 공개적인 비판이 따라야 한다.

[외교부 장관의 방중 결과를 미국에 보고하는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시민이]

북두문학

콘클라베와 영국의 권리장전


콘클라베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제도로, 교황의 선종۰사임۰제명 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소집되어 진행되는 교황 선출 비밀회의를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의 ‘cum’(함께)과 ‘clavis’(열쇠)의 합성어로, '문을 자물쇠로 잠근 방’을 의미한다.

기독교 초창기에는 로마에 거주하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교황을 선출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교황의 권위가 높아지면서는 황제나 유력 귀족들이 교황의 선출에 간섭하게 됐다.

이익 집단의 개입은 교회가 부패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1059년에 추기경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지는 개혁이 시행된다.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3분의 2의 다수결 방식이 채택되었는데, 이 방식은 선출 지연과 교황의 공석 기간이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추기경들을 특정 장소에 유폐시킨 후 빵, 물, 포도주만 공급하는 콘클라베 방식이 제안됐고, 1274년에 열린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이 방식이 제도화된 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교황 선출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콘클라베의 결과는 투표용지를 소각하여 외부로 알리는데 미결 시에는 검은 연기, 선출시에는 흰 연기가 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중세 시대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이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추기경들만의 비밀 투표로 이루어지는 교황 선출도, 교황 후보자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나 동맹 과시 혹은 금전 살포 등을 통한 사전 선거운동을 피할 수 없었다.

교황이 되면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기 때문인데, 사전 선거 운동에 많은 돈을 탕진하고 빚까지 지게 된 교황들은 결국 면죄부를 판매하는 인류사 최악의 타락을 이끌어 내게 됐다.

그러한 타락은 결국 1517년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으로 알려진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이라는 발제를 불러왔고, 이는 강력한 신권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

루터의 발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큰 변화로, 전체 유럽 사회의 사상과 의식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권에 대한 루터의 저항은 곧 영국의 성공회 출현과 같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으며, 이후 프로테스탄트 신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후에 그의 1517년 발제문은 '종교개혁 선언문'으로 불리게 됐다.

이렇게 교황의 권력 탄생을 둘러싸고 벌어진 많은 고민과 교황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많은 꼼수의 등장은, 결국 유럽 사회의 정치 의식을 신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황 선출 방식의 잡음 노출이 현재의 민주주의 기본 틀을 탄생시킨 셈이다. 종교의 문제가 정치의 변화로 이어진 최초의 사건은 영국의 권리장전 탄생에서 찾을 수 있다.

1689년 제정된 영국의 권리장전은 명예혁명의 결과로써 영국의 헌정사는 물론 나아가 세계의 의회민주주의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법률은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였으며, 이로써 영국은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교황 선출 방식의 발전이나 루터의 종교개혁이 영국의 권리장전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권력 구조와 교황 선출 방식이 중세 유럽 사회의 정치적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어떤 사건을 경험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꾀를 내기도 한다. 이른바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이익 자' 그룹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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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이익자들


5월 20일, 통일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한의 통일전선부가 '노동당 중앙위 10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심리전 중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내 나이가 60인데, 이런 부류의 얘기를 평생 들어왔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북한 통일전선부 조직의 활동 내용을 알고 싶었던 적이 없다. 일반인인 내가 그 조직에 관심을 갇는 것은 비정상적인 내용이다.

그러게 아니고 북한의 자연환경 다큐멘터리라든가, 북한의 전통 음식 소개였다면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음 편은 없나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북한의 통일전선부가 뭘 했다는 내용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또 정히 국민에게 알려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조직이 심리전 중심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했으니, 최근의 어떤 구체적 사례를 예로 들면서 그렇게 말했어야 "아! 그렇구나." 정도 반응을 할 수 있다.

이건 그냥 가마니를 가져다 놓고, "이 가마니 안에는 쌀이 아니라 보리가 담겨 있다."라면서, "그러니 이제 동의하라."는 황당한 주장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더 기막힌 현실은 이게 통일부 장관의 밥벌이라는 점이다.

그게 정녕 대남 심리전의 일부라면, 더더욱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는 게 이롭다.

알리지 않고 보도하지 않으면, 북한이 어떤 심리전을 벌여도 먹히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북한 처지로 남한인들을 향해 무슨 심리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똥푸대나 풍선에 띄워 보내는 게 전부다.

다만, 분단의 이익을 얻는 세력들에게는 통일전선부 활동 알림 서비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필요할 테니까.

'분단의 이익 자'들에게 북한의 존재는 젖과 꿀을 안겨 주는 보배와 같다. 그들에게는 분단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이용물인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게 된 것은, 이런 불쾌한 질서 유지에 소용되는 양분 공급에 신물이 난 때문은 아닐까?

[글가마 편집자]


소형모듈원자로(SMR) 보급이 가져올 새로운 시대

최근 AI 관련 분야가 뉴스의 중심에 있지만, 자주 나오지 않는 뉴스 중 우리의 미래를 바꿀 또 다른 분야로 소형모듈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가 있다.

소형 모듈 원자로는 대형 원자력 발전소와 달리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일체화한 소형 원자로로 300MW급 이하 전력 생산에 적합하다. SMR 1기의 건설 비용은 1조 원에서 3조 원 사이로, 대형 원자력 발전소 건설 비용과 비교할 때 3~5배 정도 저렴하고, 생산 전력은 3~5배 낮다.

SMR의 장점은 용수가 충분한 해안가가 아니어도 어디든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많은 전기를 쓰는 삼성전자의 평택 공장 옆에 SMR을 설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일반 가정을 기준으로 하면 SMR 1기가 생산하는 전기는 약 1백1십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기도 해, 어지간한 중소도시 하나쯤은 이 소형모듈원자로 1~2개를 건설하는 것으로 외부 연결 전력망 없이도 도시 운영이 가능하다.

또 SMR은 운동장 하나 정도의 공간이면, 설치는 물론 방사능 누출 등의 비상 안전 계획까지 세운 운용이 가능해, 도시 인근 공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형모듈원자로는 기업이 에너지 공급에서 국가 의존도를 없애는 게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섬 지역 하나를 거점으로 삼아 SMR을 운용하면, 국가의 도움 없이도 전기와 용수 등의 자체 해결이 가능해진다. 비행장까지 확보한다면, 완전한 형태의 독립 기업이 가능해지고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에 의문 부호가 달릴 수 있다.

결국 반도체와 같이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어렵고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형성된 산업군에서는, 국가가 특정 기업과 세금 등의 문제에서 협상을 해야 할 일도 생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각 도시별로 SMR을 이용한 독립적인 에너지 운용이 가능해지면, 국가 해체와 같은 급진적인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한 가능성은 미국의 텍사스 주에서 찾을 수 있다. 텍사스 주의 주요 인물들과 다수의 시민들은 텍사스가 미국 연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들의 실현 가능성에서 연방과 분리된 텍사스 주의 독립적인 전력망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는 또 다른 미래는 행성 이주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소형모듈원자로를 달이나 화성에 설치하고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능력 있는 기업이 주민들을 모집해 이주시킬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소형모듈원자로의 개발은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그치지 않고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만드는 출발이 될 수 있다. 즉, 과학기술과 돈의 힘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대를 열 가능성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의 이야기들이 곧 실제 현실이 된다는 뜻이다. 쇼형모듈원자로를 통제하는 것은 로봇일테고, 인간은 그 로봇들의 통제에 익숙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두문학]

전자 과학의 시대는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예약하는가?

전자부품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술적 구성 요소다. 우리 주변의 모든 디지털 기기들은 전자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통신, 생산, 물류, 컴퓨팅, 제어와 같은 다양한 기능이 구현 되고 있다. 만약 전자부품의 공급이 멈춘다면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산업, 의료, 교통, 통신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재앙적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증기기관의 시대로 돌아가는 셈인데, 누구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반대의 우려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과잉진보’, ‘과 잉기술’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적 기만’이 보호받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여. 이것은 신기술이니 외상으로 구매하시오. 당신의 외상 활동은 당신의 신용 점수를 높게 쳐줄 것이오. 당신은 그 덕에 첨단을 누리 는 신세대요. 강제 할당된 데이터는 내가 당신들에게 주는 할인 혜택이오. 이제 이 내용을 이해했다면, 당신의 블로그와 SNS에 최신 스마트폰을 찬양하시오.""

이런 유인적 권유가 법으로 보호된다는 게 두려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의한 파괴 미화다.

너무 빠른 제품 교체로 인한 문제점을 감추기 위해 일부 대기업과 그에 결탁한 국가는 자신들도 모르는 새, 일반 국민 지능을 제도적으로 낮추는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인적 권유가 먹히려면 보통 사람들의 지능이 낮아져야 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조성된 시장의 최후 승자는 국내 기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잉기술의 합리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떠받치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경주하고 있다. 10년 전에 밥을 사 먹으면 식당 주인과 종업원이 먹고 살았는데, 키오스크가 도입된 시대가 되니 식당 주인은 자신이 내준 밥을 먹고 간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한 명이 키오스크 제작 업무에 종사하지도 않는다. 그는 한 뼘짜리 골방에 처박혀 외상 구매로 강제 할당된 데이터를 향유하는 유권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첨단 과학화된 시대의 위험성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현대 전자기기는 많은 기술적 발전과 혜택을 제공하지만, 소비자의 알량한 편의성을 앞세운 기업의 생산성 증대와 글로벌 경쟁 력 강화는 전자 부품의 초소형화를 이끌었고, 기기의 복잡성 증가는 오히려 대중의 사고력을 천편일률화하고 있다

또한 기술의 진보는 TV나 스마트폰의 고장이 어떤 원인인지 알아도, 스스로 수리는 고사하고 제품을 만든 기업에서도 교체만 가능하지 수리는 없는 세상이 됐다. 버리고 교체해야 해결되는 과학의 시대가 과거의 우리가 원했던 미래였을까?

어떤 전자 제품은 생산 후 4년만 지나도 교체 부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업체는 중고가 보상을 제안하고 폐기 처분한다. 덕분에 최근 몇 년 새 우리의 골목을 보면 버려진 가전제품 홍수다. 심지어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된 태블릿이 제품은 멀쩡한데, 소프트웨어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지 않아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로 인한 지구 자원의 낭비와 환경의 악화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최악인 상황이다. 또한 수리 불가능한 정밀 첨단 기기의 영향력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기술을 전횡적으로 사용할 우려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무모함이 실현된다면, 사람들의 사생활과 사고방식에 대한 교묘한 우회적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생성형 AI의 답변 일부를 기업이나 국가가 통제하는 현상이 나 타나고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답변하면 안 된다는 주입은 매우 위험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들이 예고하는 것은 그들 일부의 판단이 세계의 가치 기준을 좌우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기계는 인간화되고 인간은 기계화가 되는 충격적인 시대가 도래했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판단을 끌어내고 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설령 그가 지금 시대의 최고 부자였을지라도 말이다. 어디에선가는 진보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2045년 3월 15일이다. 모처럼 집을 나선 제임스 김 씨는 식당 앞에 써 붙여진 문구에 마음이 동했다.

‘어서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2024년 스타일 한국어 라이브로 듣고 싶다면, 특별 할인된 최저가 5,000원에 1회 서비스 사용권을 제공하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북두문학 글가마 제 5호. 서울 불광동에서 2024.06.01 발행 / 출판사 등록번호 제 2022-00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