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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가마


    제 4호

세물점을 아십니까?
- 사라진 문화 -


세물점(貰物店)은 민간에 필요한 각종 의례용품을 빌려주던 점포를 말한다.

사라진 세물점포 사진
겨우 사진 한 장 남기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세물점포

1960년대까지도 일부 명맥이 유지됐으나, 지금은 이 사진 한 장이 전부다. 정부의 새마을 운동으로 마지막까지 연명하던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지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의 개인들에게 팔려 나가거나 폐기됐다.

세물점의 물품들은 문화재 취급이 되지 않아 반출이 자유로웠고, 그러한 무관심은 세물점을 기반으로 형성된 전통문화의 명맥도 함께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사라진 것들 중에는 한국의 색상도 포함된다. 현재 단청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 사용했던 색 안료를 구하지 못해, 수입산 안료로 색을 맞추고 있다.

세물점에서 안료를 취급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단청 안료를 구입하는 곳은 전수자에게 가장 마지막에 알려줬는데, 그전에 세물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만계 화교들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던 일부 원료들의 거래가 막힌 탓도 있다.

새마을 운동은, 일제의 문화 탄압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던 전통을 한순간에 없애 버렸다. 주로 무속을 매개한 악습 타파의 명목이었지만, 권력자의 독선에 따른 밀어붙이기식 판단은 중국의 문화 대혁명에 버금가는 역사의 오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는 국민의 자발적인 힘에 의해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권력자의 판단에 따른 일소(一掃) 주의적 결행은 예술인의 관점에서 무서운 일이다.

당시의 새마을 운동은 대표적 악습으로 낙인 된 마을굿만 없앤 게 아니라, 일반 전통 풍습들도 거의 다 제거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그것은 우리 전통의 대부분이 주역의 원리인 24 절기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이었고, 그 중심에 무속 전통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사일런트 세일즈맨 '컬러' 책 표지
책, [사일런트 세일즈맨 '컬러']

독재자의 판단으로 없앤 것은 하나뿐이었지만, 연계된 문화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 이유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누명이라도 씌워 고문하고 잡아 가두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던 부분이다.

당시의 사회상은 권력자의 한마디에 누구도 문제점을 거론할 수 없는 강압적 환경이었다.

뒤늦게 전통문화가 급속도로 소멸하는 것에 문제점을 깨닫고, 각 마을 단위의 ‘전통문화 보존하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돈의 가치가 전면에 등장한 세상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마을 운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다들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농촌 사회도 도시만큼 옛 전통이 사라진 지 오래고, 구성원들 간에는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전통을 복원하는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새마을 운동으로 살기 좋아진 농촌은 이제 마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촌 현상이 오로지 새마을 운동 때문만은 아니지만, 전통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이 상황을 가속했던 것은 틀림없다.

만약 전통의 문제를 사회 발전에 따른 자연적인 변화로 유도했다면, 지금 같은 인구 감소와 농촌 소멸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 '사일런트 세일즈맨 컬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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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


금은 변하지 않는 가치와 변하지 않는 색을 가진 유일한 물성의 금속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금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보입니다. 금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죠.

금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색과 성질을 가졌다는 부분입니다. 그런 탓인지 인간이 유일하게 음식의 일부로써 식용으로 섭취하는 금속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에 섭취된 금은 100% 대변으로 배출됩니다.

금

금을 섭취할 수 있는 물성적 이유는 단 하나, 무독성이라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금을 식용으로 섭취하는 것은 과시욕과 정신적 만족을 위한 것일 뿐, 실제로는 금 역시 중금속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잉 섭취 시 재생 불량성 빈혈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금은 그렇게 인간의 과시에 가장 유용한 금속인 탓에, 하나의 제국을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잉카제국이죠. 만약 잉카에 금이 없었다면, 그렇게 비참한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많은 금을 가졌지만, 그것을 지킬 힘은 미약해서 비참한 멸망을 당했던 것이고, 그 멸망은 잉카제국에 대한 광범위한 착취와 폭력으로 이어져,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새로운 혼혈 인종으로 바뀌는 전대미문의 비인륜적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금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사례도 있습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은 러시아가 보유한 금과 보물을 약탈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약탈 성향은 후에 약소국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침탈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추악한 손길은 한국으로도 이어져, 그들은 강화도에 보관된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함은 물론 가져가지 못한 다른 유산들은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요즘 말로 약탈 정신의 '끝판왕'쯤 되는 만행을 국가적으로 행사했고, 이제는 그러한 약탈문화재를 자랑까지 합니다.

그에 비하면 과거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대제국 중국의 사례는 특별한 면이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그렇게 금을 좋아했으면서도, 금을 빼앗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사실이 없는 점입니다. 오랜 역사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신라에 금이 많다는 내용이 외부로 퍼졌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신라의 금을 차지하기 위해 침략했던 사실이 없는 것은 그런 증명 중 하나입니다.

금과 관련해서는 근대 시기의 한국도 중요한 관찰 대상입니다. 일제 강점 시절의 통계를 연구한 금광 전문가 권용일 씨의 연구에 따르면, 1935년, 1년 동안에 새롭게 신고된 금광이 976곳이고, 당시 한반도 전체에 약 4,000여 곳의 금광이 채굴 중이었다고 합니다. 또 1939년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는 공식 금 생산량이 31.5톤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2024년 5월 12일 현재 가치인 1 드라이온스(약 28.35그램)당 2,362달러로 환산하면, 약 24억 달러 정도입니다. 이게 한 해 생산량이니 일제 강점기 시절 전체를 따져보면 현재 가치로 500억 달러 ~ 1,000억 달러 상당의 금이 일본으로 흘러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 한국의 금광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금은 인류가 사랑한 최초의 금속

역사적으로 금은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최초의 금은 기원전 5천 년 경으로 거슬러 가는데, 태양을 숭배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금을 태양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금으로 된 투구, 금 장신구 등을 사용하며 자신의 권위를 자랑했습니다.

금이 기능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B.C 670년경 리디아(지금의 튀르키예)로 그들은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뒤 이은 로마에서는 금화와 은화가 제국의 기축통화로 사용됐고, 이후로 세계는 금을 최고의 보유 재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잊혔지만 한반도에서도 대한제국 시절인 1905년에 금화 3종(오원, 십원, 이십 원)이 주조됐던 사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곧 화폐 발행 권한이 일본으로 넘어가 단명한 탓에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대한제국의 금화는, 역사상 가장 짧은 생명을 가졌던 금화라는 원치 않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금은 대한제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대부분에서 금본위제라는 제도적 이름으로 오랜 세월 화폐의 기준으로 사용됐지만, 신용카드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71년부터는 달러본위제로 변경됐습니다. 미국의 파워에 세계의 경제 질서가 새롭게 개편된 것이죠.

만약 길바닥에 달러와 금, 한국 돈이 놓여 있고, 어떤 계기로 경쟁적으로 줍게 된다면, 한국 돈이 가장 나중에 선택되거나 버려지는 것이 달러본위제의 모습입니다.

금과 관련해서 한국인에게 특별한 추억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97년 국가부도를 맞아 시작된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입니다. 이때의 '금 모으기' 운동은 민간에서 주도해 시작된 것으로, 그 당시 모였던 금의 총량은 약 225톤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는 온 국민이 나섰는데, 위기가 끝나자 부의 분배 구조는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IMF전 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대기업 총수 중에는, 거리낌 없이 국민들을 약 올리는 목적으로 '멸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가 됐습니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아무 원한 관계가 없음에도, 불특정 다수의 서민들을 조롱하고 싶은 정도로 망가진 사회상을 대변하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IMF가 끝난 지 20여 년 만에 벌어진 일로, 국가가 어려웠던 시기에 금을 모았던 바보들에게, 조롱 폭탄을 안겨준 것이나 진배없는 내용입니다.

그뿐 아니라 강화된 빈부격차는, 그때 금을 모았던 국민들 중 일부에게 "너는 빈곤하니, 자살 선택권을 가진다."라는 사회적 교수형을 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 국가라는 타이틀도 불명예스러운데, 그 압도적 원인이 경제적 빈곤이니 처참한 상황입니다.

IMF 시절에는 보통사람의 일생을 기준으로, 노력하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차라리 IMF가 지속됐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자본주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짓을 했던 것이죠.

현대에 와서 금은 여러 형태로 거래됩니다. 14k는 58.5%의 금, 18K는 75%의 금, 24K는 99.999% 금으로 통상 순금이라고 합니다. 14k나 18k에 사용되는 합금으로는 은, 구리, 아연 등이 적절한 비율로 섞이는데, 14K나 18k 금은 매입할 때 보다 판매할 때, 훨씬 더 형편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연간 30톤 정도의 금이 거래되는 종로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여러 종류의 금 중 24k 순금을 중요한 판매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금을 보유하고 싶다면 순금으로 보유해야 하는 것이죠.

금은 수익자산 개념이 아닌 안전자산의 개념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각국의 중앙은행 금 보유율 1위는 8,113.46톤을 보유한 미국이고 2위는 3,352.65톤을 보유한 독일입니다. 1위와 2위가 엄청난 격차를 나타내게 된 데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의 금본위제 영향입니다. 한국의 금 보유량은 36위로 104.45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IMF 당시 국민이 모았던 금의 32% 수준입니다.

달러본위제로 바뀐 후에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을 현금처럼 보유하고 있는 것이고, 기회가 되면 그 양을 늘리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는 금이 안전자산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명에 해당합니다.

자본주의적 성향을 반영한 시장의 흐름은 '불리온’이라는 형식의 새로운 금 시장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금에 조형적 디자인을 입혀 부가가치를 더한 것으로, '수집품의 가치가 있다.'를 매개로 금 자체에 새로운 이익을 붙인 방식입니다.

하지만 금은 예로부터 녹이는 과정이 반복된 귀금속으로, 금을 안전자산의 개념으로 여기는 관점에서는 어리석은 보유에 해당합니다. 오히려 수익성에서는 예술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안겨줍니다.

[북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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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차이
중동의 민담을 번역하며


물라 나스레딘 호자 책 표지
물라 나스레딘 호자

얼마 전 북두문학에서 새로 출간한 번역서가 있다. 책의 제목은 '물라 나스레딘 호자-21세기 트릭스터의 지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중동 지역이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변방인 탓인지, 아직 판매 실적은 없다. 한국인의 이해에 부합하게 번역하느라 애를 썼지만, 반응이 없으니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 이 책은 ISBN 번호가 부여되기는 했지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납본조차 거절한 책이기 때문이다.

중앙도서관 사서의 말은, 인터넷에 소개된 내용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삼국지나 이솝우화나 기타 많은 고전들 모두 등록이 거절돼야 한다.

더구나 이번에 출간된 '물라 나스레딘 호자'는 직역이 거의 없이 편저자의 노력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 것을 생각할 때, 상당히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거절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의 사서와 이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아래 책 내용 중, 두 대목을 소개한다.

나스레딘의 정직한 밀수

매달 1일, 나스레딘은 30마리의 당나귀에 짚단을 가득 실어 국경을 넘었다.

나스레딘의 정직한 밀수

그때마다 세관원은 그에게 질문했다.

“물라!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나스레딘은 항상 똑같은 대답을 했다.

“저는 정직한 밀수업자입니다."

나스레딘의 말을 들은 세관원은 당나귀에 실린 짚단을 다 풀어헤쳐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일은 매달 반복됐다.

세월이 흘러 은퇴한 세관원이 우연한 곳에서 나스레딘을 만나게 됐다.

서로 불편한 관계였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탓에 둘은 곧 친해졌다.

세관원은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을 물어보기로 했다.

“물라! 지난 수십 년, 내가 당신의 당나귀에 실린 짚단을 매번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밀수했다는 것인지 이제는 알려 줄 수 있나요?"

남자의 말을 들은 나스레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의 정직한 밀수품인 ‘당나귀’를 털어놓았다.

호자의 당나귀

나스레딘 호자는 당나귀를 시장으로 가져가 30 디나르에 팔았다.

당나귀 경매

호자의 당나귀를 산 상인은 시장의 중앙으로 이동해 경매를 시작했다.

"이 훌륭한 당나귀를 보세요!"

상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보다 더 좋은 당나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 튼튼한 골격을 보세요!"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당나귀의 좋은 특성들을 열거했다.

상인의 판매 연설이 끝날 무렵 한 남자가 40 디나르를 주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자는 50 디나르를 제안했고, 세 번째 남자는 55 디나르를 제안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호자는, 많은 이들이 방금 전까지 자신의 소유였던 당나귀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저 평범한 당나귀라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라며 자책했다.

그 사이 경매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 손을 든 아랍의 상인

상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75 디나르까지 나왔습니다, 더 이상 제안이 없다면 75 디나르에 판매하겠습니다.”

그때 호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80 디나르요.”

‘물라 나스레딘 호자’ 이야기가 한국의 인문학적 전통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이야기 속 ‘상인’의 잦은 등장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슬람권 대표 문학인 천일야화도, 많은 이야기에 상인이 등장하고 무역이 등장합니다.

야화 속 대표적인 이야기인 ‘신밧드의 모험’ 역시도, 무역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의 이야기에 모험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됐고요.

유사한 형태의 한국 소설인 홍길동전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그것을 지탱하는 지배 체제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른 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의 관점이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사고의 틀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간혹은 우리 사회 가치관에서는 비난받아야 할 내용이 그들 세계에서는 유머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 전부는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서구 세력과 아랍 세력의 대립은, 그들의 사고 체계가 다른 것도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책 '물라 나스레딘 호자-21세기 트릭스터의 지혜'는 중동 지역민들의 사고 체계 일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북두문학 발행인 이준엽]


북두문학

추악한 배금주의 사회


사회적 약자의 길에 들어서면 딱 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의 세계가 열려 있다. 그곳에는 어떤 종류의 노동관계법도 무의미하다. 정확하게는 적용되지만, 고용주는 적용되는 만큼 분노를 충전해 노동조건을 최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푸세식 화장실을 만들고, 세면대는 호스를 매달아 바닥에 플라스틱 대야를 놔주는 식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장기간 고용했을 때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요즘 세상에 푸세식 화장실이 말이 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방의 작은 공장들에서는 사실이다.

필자가 경험했던 2015년 파주의 단조공장은 부부가 얼마나 교활한지 가끔은 지옥에 있는 야차가 환생한 것으로 의심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그 공장 말고 유일하게 활동하는 다른 공간은, 어이없게도 종교 활동이었고 부부는 그곳에서 맹렬한 계급 신도였다.

그들에겐 매주 교회 모임에서의 명성과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잔인한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 부부는, 무겁고 큰 철제 단조품을 건물 위로 올리는 사다리차를 이용할 때, 고가 운반대의 보호 난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운반대의 안전 난간을 넣고 빼는 착탈 시간 때문에, 용차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에이. 그거 잠깐 올라가는데 난간 설치하지 마세요. 올라가면 또 걷어야 하는데. 조심해서 타면 돼요.”

그들의 셈법은 노동자 스스로가 일정 시점이 지나면 그만두게 하는 경영 전략이다. 근속연수가 생기는 노동자를 두면 처우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또 오래 얼굴을 알고 지내다 보면, 직원 개인 신상의 어떤 문제에 사정을 봐줘야 하는 지극히 인간다운 면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 사업장이 정말 나쁜 또 하나의 이유는, 노동의 질을 최악 조건으로 유지하는 원인이, 자신이 어쩔수 없이 낮은 단가로 계약을 따낸 것처럼 덧대는 위장을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모든 예상 지출이 포함된 정상가로 따낸 계약이면서, 사정상 공기가 짧은 것처럼 새로운 거짓말로 노동자를 채근하기 때문이다. 야근 수당 없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그들에게는 노동자가 몸 씻을 시설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지, 그게 꼭 샤워 꼭지가 달린 시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샤워 꼭지가 생기면 온수기도 설치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세수만 하고 퇴근할 사람이 몸까지 씻고 가는 손해가 사업주에게 생긴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이유도 포함되는 항목으로 ‘내가 돈을 버는데, 남 사정 봐줄 필요 없다.’라는 잔인한 자본주의 논리다.

그들은, 내가 왜 당신한테 월급 외의 혜택을 줘야 하느냐는 생각으로 사업을 한다. 그들은 그게 노동자의 최소 권리이기 이전에, 대면하는 인간관계에서의 기본 예의라는 사실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 부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교회 안에서의 금력 입지를 위한 계급 시스템도 문제로 작용했지만, 자칭 노동자를 위한 정당의 역할도 컸다.

엄선된 연봉 1억 원 노동자 중심의 정당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킨 탓이다. 그들의 요구에 대한 상대적인 반발이 더 많은 수의 만만한 노동자들을 나락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안타까운 것은 최저 임금만 받는 힘없는 노동자들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다. 제도권의 싸움은 1억 연봉자와 정치권이 했지만, 현장에서는 최저 임금 노동자와 영세 업체의 고용주간 다툼으로 바뀐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영세 고용주의 조건이, 그들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고소득 세력들과 어찌 같은 테두리에 있겠는가 말이다.

이제 그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하나님이란 허울 좋은 존재로부터도 버림받은 상황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자살 선택권'을 부여한 하나님이란 존재는 재앙의 씨앗으로 바뀌어 있다.

보수주의를 표방한 정당의 정치인들은, 1억 연봉자들 대신해 최저임금자들을 괴롭히며, 우리를 찍지 않으면 너희는 더 괴로워진다는 말을 매일 떠들고 있다.

진보주의를 표방한 정당의 정치인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주의 정당을 찍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만 하며, 자기들은 옳은 정치를 했다고 떠들고 있다.

사람들은 배금주의에 맞대어 점점 더 배타적으로 변하고 있다.

[어느 쉰둥이의 실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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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신


내 유년 시절에도, 맥아더 장군신을 몸주로 삼았다던 무당이 우리 집 굿하는 날 간혹 눈이 마주치면 섬찟했었다. 가끔은 꿈에 색색의 옷을 입은 무당의 무서운 눈을 마주쳐 가위가 눌린 적도 있었다.

“할머니가 서울 만신이셨어요.”

“역시 그렇군요.”

연화가 왜 3인 회식을 거부했는지도 이제 이해됐다. 나는 느끼지 못했던 사장의 영계(靈界) 시선이, 아마도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감시자의 눈빛으로 여겼을 터이다.

“서울 어디에서?”

“혹시 마천동 아세요?”

서울에서의 내 청소년 시절을 통째로 욱여넣었던 마천동을 어찌 잊겠는가.

“앞으로 문제 풀이 끝나면 그냥 내려가지 말고 칠판 끝에 사는 동네 이름 적고 내려가라.”

“거여동, 마천동은 옛날 천민들 거주지역인 ‘소(所)’였어, 소 알지?”

고등학교 입학이 평준화되고 5년이 흘렀어도, 계급화된 자본주의 선민의식을 포기할 수 없던 선생 중에는, 가난한 동네에서 배정된 학생들을 대 놓고 깔보기가 예사였다.

덕분에 K고등학교 시절의 강남 학우들은 중학생이던 내가 마천동에서 연탄배달 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친구 사이의 정을 나누거나 의리를 돈독히 할 첫 번째 기본 요건 ‘솔직함’이 배제된 가장행렬의 학창 시절이었다.

연탄배달을 하던 ‘마천소 출신 학생’, 나의 고교 시절은 그렇게 덧없이 지나갔다.

“마천동에서 꽤 오래 살았죠.”

“어머, 저도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천동에서 살았어요. 태어난 곳도 그곳이에요.”

“그래요? 야. 이거 직장 내 소모임 하나 만들어야겠는데요?”

“소모임요? 크크크.”

이렇게 재잘대는 모습을 감춘 채 사는 것이 직장이고 사회적응인 세상이라니, 연화도 가엾고 나도 가엾고 세상도 참으로 가엾다.

“근데요. 푸훗. 우리 할머니가 모신 신이 맥아더장군이었대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수군대기도 했어요.”

“맥아더 장군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소금 알갱이만 한 소름이 내 팔뚝을 지나 등까지 돋아 올랐다. 그건 연화가 사장이 무당이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느꼈던 충격과 같은 강도의 놀라움이었던 것 같다.

‘이럴 수가. 이런 기연이.’

마천동이라고 해서 혹시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느낌은 있었지만, 느낌이 실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렇죠? 너무 웃기죠? 크크크.”

연화는 내가 맥아더를 장군신으로 모셨다는 할머니 얘기에 놀랐다고 생각해 깔깔대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분이 내 수양어미였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두려움 중에 일부는 그 만신어머니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체험소설 '사람돈물] 中


4호 변명


글가마 3호가 마지막으로 발행된 때가 작년 5월 25일입니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다 되어, 겨우 4호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비정기 간행물이라지만, 1년은 너무 심했다고 자책합니다. 물론 그 안에는 출판사의 나름 바쁜 일정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팔리지 않는 책들을 만드느라 보낸 시간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역량 부족 탓입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계속 '글가마 4호'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었습니다.

제호를 기다리는 유료 구독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보면 우스운 변명입니다.

부족한 필력과 남루한 편집자의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오늘 4호를 발행합니다.

[글가마 편집자]


북두문학 글가마 제 4호. 서울 불광동에서 2024.0512 발행 / 출판사 등록번호 제 2022-00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