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팥죽의 기억이 잊혀질 때쯤 등장하는 팥 음식은 한여름 팥빙수다.
요즘에는 한 그릇에 10만 원, 이름만 팥빙수에 온갖 과일이며 다른 부재료가 가득한 디저트까지 등장해 귀빈 대접을 받지만, 70~80년대에는 손으로 돌리는 수동 빙수기에서 나온 얼음 가루에 미숫가루와 단팥이 전부였던 진정한 '팥과 빙수'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누군가 팥빙수에 찹쌀떡을 조각내 넣기 시작하면서 곧 모든 팥빙수에 떡 조각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각종 젤리에 우유까지 넣어지며 한 세대를 뛰어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됐다.
유아용 분유 가루를 몰래 넣으며 마치 큰 비법인 듯 행세하던 빙숫집 주인의 모습도 아련한 기억 속에 있다.
이제는 마트에서 통조림으로 된 단팥을 팔고 있어 단팥을 먹고 싶으면 언제든 가능하지만, 어쩐지 심하게 짓이겨진데다 너무 달기까지 해서 살짝 부담스러운 것이 편리함 속 흠결이다.
강원도가 고향인 나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팥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단팥전이다.
강원도는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 농사가 필수였기 때문에, 메밀가루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메밀은 그 자체로는 바다 생선 도루묵처럼 아무 맛도 없는 곡식이다.
어머니는 그 메밀가루에 약간의 밀가루와 단팥을 섞어 커다란 무쇠 솥뚜껑을 프라이팬 위에서 단팥전을 만들어주셨다.
기름이 요즘처럼 흔하지 않아 모양은 사진처럼 예쁘지 못했지만, 그 맛은 서울에 올라와 '아이스께끼'를 먹어보기 전까지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이준엽]
동자승(童子僧)은 나이가 어린 승려를 말하는데 딱히 몇 세부터 몇 세까지라는 범위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동자승이라는 명칭이 사라진다고 보면 적당한 기준이 될 것 같다.
옛 절에서도 동자승이 공양 온 보살들의 눈치를 보는 때가 되면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동자승과 관련해 인터넷 검색을 하면 뜻밖에 '고기'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의아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불교가 수행을 강조하는 엄격함만을 고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절에서도 동자승들에게는 육식을 허용한 것에서, 동자승의 연관 검색어로 고기가 등장한 것 때문에 그렇다.
스님들은, 한창 성장기의 어린 아이들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 것이, 불교의 종교적 가르침 만큼 큰 덕을 가리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10여년 전 동자승으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충북 괴산의 무심사 지광스님은 "동자승에게는 불심을 가르치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라며 불교의 포용성을 강조했다.
아쉽지만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동자승은 보기 힘든 옛 기억의 일부가 됐다.
5월이 되면 불교를 따르는 집안의 아이들 일부가 행사치레로 동자삭발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됐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10여 명 넘는 동자승이 모여 떠들썩했던 무심사도 그들이 성장한 후 동자승 무리는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동자승을 주제로 사용하는 공간은 예술이다.
불교의 달마대사와 더불어 무명의 동자승은 무언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무심(無心)의 세계를 이끄는, 중요한 동행자로 동양화의 중요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동양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곁에서 비록 동자승은 떠났지만, 그 문화적 상징성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같은 동양권이지만 공산주의를 채택한 중국과 북한에서는 종교에 대한 반발로 동자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문화적 깊이를 잃어 버린 것이고,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것은 동양 삼국 중 동자승이라는 개념의 문화적 아이콘을 유지하는 나라가 한국뿐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일부에서의 과격한 기독교적 수사가, 수천 년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문화적 코드 조차 봉쇄하는 것에서는 반성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극단의 그것은 북녘의 사상적 모습과 흡사하다.
[이준엽]
북두문학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유능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매체들에서도 요리와 관련한 콘텐츠가 가장 상위권에 포진해 있고, 유튜브에서도 가장 쉽게 접하는 영상은 요리 관련 정보다.
그렇지만 정작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콘텐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빈약하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을 통한 요리 관련 영상들이 잘못된 요리사를 배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깐풍기가 적당할 것 같다.
요즘 소개되는 깐풍기 요리법에는 소스에 식초가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값 좀 한다는 유명한 요리사들도, 깐풍기 소스에 다량의 식초를 사용한 깐풍기를 소개한다.
그런데 나는 그분들이 정말 옛날 깐풍기를 먹어봤던 사람들인가 의심이 든다.
물론 요리의 세계가 스스로 변형이 가능한 창작품을 가장 활발히 인정하는 토양이기는 하지만, 과거 중국음식점에서 판매하던 깐풍기 레시피에서 식초 맛을 유추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식초가 아예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은 아니다.
다만, 튀긴 닭요리에서는 식초가 들어가도 맛이 아닌 역할에 어울리는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요즘 소개되는 깐풍기 레시피 소스에는, 혀에서 식초 맛을 느끼게 하는 분량이 포함되어 있어, 예전의 깐풍기와 전혀 다른 맛이 만들어지고 있다.
초보자가 자칫 이런 레시피들을 참조하다 보면, 유능한 요리사의 길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익은 식초 맛이 포함된 꿉꿉한 깐풍기를 내고, 어떤 이는 식초 없는 깐풍기를 내 서로 다 깐풍기라고 주장하면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긴 하지만, 익은 식초의 꿉꿉한 맛이 좋다고 말한다면 더욱 할 말이 없다.
유능한 요리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는, 요리를 만들기 전에 요리의 기본 개념을 익히는 일이다.
그런데 요리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인 한식조리 기능사 실기시험의 30여 가지 요리에 집중하면 쓸모 있는 요리사가 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진정한 한식 요리사의 길은 한 가지 재료에서 조리기, 굽기, 볶기, 찌기, 무치기 등의 기본 기술을 먼저 습득해야 한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재료의 특성에 기인한 맛을 뽑아내지 못하고, 오로지 양념의 맛이나 조잡한 치장으로 완성된 낮은 수준의 음식만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고등어를 가지고 조린 고등어, 석쇠에 구운 고등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꽤 두른 튀긴 고등어(볶기에 해당), 양념을 얹거나 김치를 곁들인 고등어찜, 구운 고등어 무침 등 크게 다섯 가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한식 조리기능사 실기시험은 비빔밥이니, 콩나물밥이니, 탕평채니, 칠절판이니, 육회니 하는 식의 요리 단품을 만들게 한다.
대체로 다섯 가지 기본기가 골고루 포함된 시험이기는 하지만, 비전문가적인 요리도 시험과목에 포함되어 있어 의심스러운 점도 있다.
그 안에서 가장 놀라운 요리는 생선양념구이다.
생선을 굽는데 왜 양념을 얹을까?
양념이 적합한 생선 요리는 구이가 아닌 찜과 조림이다.
구이에서는 필수적으로 양념이 타기 때문에 불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양념을 얹어 만든 구이는 그냥 구운 생선구이 맛을 망치는 수준이다.
그냥 굽기만 해도 월등한 생선 맛에 왜 양념을 끼얹어 굽는가 말이다.
구운 생선에 꼭 양념의 맛을 포함시키고 싶다면, 그냥 구운 생선을 양념장에 찍어 먹는 방법이 월등히 맛있다.
아니면 구운 생선이 채 식기 전에, 양념을 끼얹어 맛을 내는 방식이 생선의 풍미를 유지하며 맛을 내는 방법이다.
요리사가 되려는 시작부터, 재료의 특성에 맞지 않는 요리법에서 진지함을 요구하니, 조금 과장해 표현한다면 요리사가 되기 위한 출발부터 꼬인 셈이다.
양념이 불에 직접 닿으면서 나오는 유해물질은 요리하는 사람의 건강도 장기적으로 피해를 누적하게 된다.
그런 것들이 요리사들의 평균 수명을 짧게 하는 이유다.
생선뿐 아니라 흔한 채소인 가지를 가지고도 조리기, 굽기, 볶기, 찌기, 무치기와 같은 각 방식에 맞는 요리법이 따로 있다.
흔한 재료인 두부조림도 두부를 먼저 프라이팬에 살짝 구운 후에 조리면, 훨씬 더 깊은 맛과 먹기에도 용이한 조리법이 된다.
하지만 많은 요리사들의 두부조림을 보면, 굽는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발견된다.
어떻게 해서 그런 황당한 요리법이 소개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유명 요리사들도 제대로 만들어진 진짜 두부조림을 먹어 본 사실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짝 구운 두부로 만든 두부조림과, 맨 두부로 만든 두부조림은 맛에서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유능한 요리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는 각 재료의 위 다섯 가지 응용법을 꾸준히 연습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그 안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유능한 요리사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다섯 가지 기본기인 조리기·굽기·볶기·찌기·무치기 중 어떤 조리법에 식초가 어울리는지를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 요리를 배우는 첫 번째 목표가 되도록 해야 한다.
특정한 요리 단품을 멋들어지게 만드는 방식에 집중하는 것은, 요리사가 아니라 수명 짧은 조리노동자가 되는 방법이다.
조리 노동자는 친구들 중 제일 먼저 죽지만, 유능한 요리사는 친구들의 건강 염려에 감사하며 산다.
[이갑춘]
로티세리 치킨(Rotisserie chicken)은 통닭에 꼬챙이를 꽂아 돌리면서 굽는 로스트 치킨을 말하는데, 이 중 전기의 열을 이용하는 것을 전기구이 통닭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명동의 영양센터를 중심으로 전기구이 통닭이 시작됐다.
1970~80년대 서울에 온 지방의 아버지들은, 명동에서 이 전기구이 통닭을 사가는 게 큰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통닭을 들고 기차나 버스에 오르면, 그 냄새로 인해 죄 없는 다른 이들이 허기진 저녁의 고통을 참는 아픔이 상당한 추억이기도 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첫 월급을 받은 때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70년대 학창 시절 버스 안에서 맡았던 그 고통의 로티세리 냄새의 기억을 쫓아, 명동의 영양센터를 찾아갔던 일이다.
첫 월급이 65만 원이었기에, 그 당시에도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기어코 먹고 말았다.
최근의 식용유에 튀기는 방식보다 건강에 좋은 구이 방식이며, 기름이 쪽 빠져 바삭 야들 바삭해진 껍질의 맛이 최고로 꼽힌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입맛으로는 너무 정직하고 촌스러운 맛이다.
근래에 인기 있는 형식은 이름부터 '통닭'이 아닌 '치킨'이라는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
대체로 양념치킨이 대세인데, 북두 편집자의 입맛으로는 너무 달거나 짠맛이다.
이걸 또 '단짠단짠'이라는 요령 좋은 표현으로 바꿔 부르니, 닭튀김하는 이들이 어느새 말재간도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전기나 숯에 기름을 쏙뺀 방식의 로티세리 치킨이 대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유럽인들이나 남아시아인들은 '통닭'이라는 한국어를 맞게 바꿀만한 마땅한 단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치킨은 있지만 통닭은 없는 문화권에서 시작된 닭튀김이, 한국에 와서 세계를 호령하는 맛으로 변신했다.
요즘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압도적으로 치킨을 얘기한다니 말이다.
[이준엽]
예나 지금이나 미인들에게는 애증의 사연이 생긴다. 물론 모든 미인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확률적으로 높다는 말이다.
그래서 옛 이야기 속 등장하는 여인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의 시작도, 항상 절세미녀였다는 등의 미사여구가 먼저 등장한다.
미인을 두고 벌어진 사건이라야 대중에게 공감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현대에 등장한 텔레비젼 연속극 주인공 연예인들이 하나 같이 미인형인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된다.
그런 이야기 속 주제에서 미인의 얼굴은, 때로 천형(天刑)이 되기도 한다.
이번 이야기는 옛 백제국 '도미의 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름 모를 여인을 소재로 했다.
그녀는 비록 낮은 벼슬을 가진 이의 부인이지만, 얼굴은 일국의 절색이요 살아가는 모습 또한 본보기가 되어, 세상 사람들 모두 흠모해 마지 않았다.
그 시절 백제의 임금 개루왕(蓋婁王)은 신라 진지왕(眞智王)에 지지 않는 황음무도한 임금으로, 도미의 처가 천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음심이 불같이 일어나 먼저 도미를 불러들였다.
왕은 도미를 보고 "대체 부인이란 것은 무엇보다도 정결한 것이 첫째라 하겠지만, 만일에 아무도 없는 어둑한 속에서 감언이설로 잘 꾀인다면 아무리 철석간장 같은 여자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들은즉 너의 처가 천하의 미인이고 절개 또한 높아 누구도 말을 부쳐 볼 수가 없다 하니, 만일에 나와 같은 일국의 임금으로 재물과 보화를 많이 주고 궁중에서 총애하겠다고 한다면 어찌 되겠느냐"고 물었다.
도미는 임금의 말이 너무도 천만 뜻밖인 데다, 황송함에 주눅 들어 아무 대답도 못하고 한참을 있다가 억지로 대답했다.
"황송한 말씀올립니다. 사람의 마음 속은 알 수 없는 것이긴 하나, 소신이 생각하기에, 신의 처는 비록 죽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이번엔 오기가 생겼다. 개루왕은 우선 도미를 궁중에 가두어 두고, 가까운 신하에게 왕의 복색을 갖춰 입게한 후에, 도미의 처를 만나도록 명령한 후 그녀의 절개를 시험하기로 했다.
왕은 먼저 서찰을 띄워 그럴 듯한 이유로 왕이 도미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내용인 즉, "임금께서 네가 어여쁘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항상 사모하시다가, 이번에 우연한 일로 너의 남편과 내기를 하여 이기게 됐다. 그런데 내기의 조건이 부인이었기 때문에, 왕은 너를 데려와 궁인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는 왕의 여자이니 왕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이윽고 왕의 복장을 한 신하가 짐짓 왕인 척 도미의 집을 방문해 수청을 요구했다.
그러자 영리한 도미의 처는 의심스러운 모습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황송하옵게도 임금께서 저와 같은 천한 계집을 그리워 하셨다니, 어찌 따르지 않겠나이까. 그러하오나 지금은 몸 단장이 옳지 않으니, 기다리시면 목욕 재개 후 의복을 고쳐 입고 수청을 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도미의 처는 밤을 기다려 단장시킨 집 노비를 방으로 들여 보내 천침을 시켰다.
도미의 처를 욕보인 것으로 알던 왕은, 나중에 자신이 속은 사실을 알고 크게 노했다.
화가 난 왕은, 도미에게 없는 죄를 씌워 잡아들여서는 두 눈을 뽑은 후 배에 태워 흐르는 강물에 운명을 맡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임금은, 이번엔 자신이 직접 성폭행을 할 생각으로 도미의 처까지 잡아 들였다.
그렇지만 영리한 도미의 처는 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제 남편이 나라에 죄를 지고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이제 저는 혼자 살 수 없고, 어떠한 남자던 다시 얻어야 살 수 있는데, 마침 임금께서 저를 그렇게 총애하시니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생리 중이라 몸이 매우 불결하니, 며칠만 기다려 주시면 목욕 재개 후 천침을 들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기다리기로 했으나, 도미의 처는 감시자가 없는 틈을 노려 도망했다.
그러나 강가에 닿았지만 배를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데, 상류에서 마침 빈 배 한 척이 떠내려와 그것을 타고 바다까지 흘러갔다.
도미의 처는 배가 닿은 천성도(泉城島)라는 섬에 내려 주변을 살피던 중, 낯 익은 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연하게도 그 섬에는 두 눈이 뽑혀 앞을 볼 수 없는 자신의 남편 도미가 와 있었던 것이다.
부부는 서로 얼싸안고 울며 서로를 위로했다. 부부는 다시 배를 타고 흘러 고구려 땅인 산산(高句麗 蒜山) 아래까지 도망했다.
사연을 들은 고구려 사람들은 도미 부부를 불쌍히 여겨 의복과 음식 집을 주어 살게 했다.
[편집:북두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