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김] 소설 어린왕자 속 Planet(소행성)과 Star(별)의 이해
소설 어린왕자를 번역하는 과정에 가장 큰 애로점 중 하나가 소행성과 별의 개념 설정과 구분이다. 이 부분을 어떤 관점에서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소설의 성격이 달라진다.
원문의 처음 의도대로 소행성(Planet)에 집중하면 지금 세계인들의 뇌에 각인된 어린왕자의 상상력과 꿈의 세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반대로 원문의 의도에서 조금 벗어나 ‘소행성’을 ‘별’로 대체히면 지금 사람들에게 각인된 어린왕자의 이미지에 부합하게 된다.
그러한 차이점은 소설 어린왕자가 만들어진 1940년대 초의 과학적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지금은 소행성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와 그때의 소행성 이미지는 달랐다.
소설이 구상되고 발표됐던 1940년 경의 분위기에서 소행성은 인류의 상상력과 탐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천문학의 발전과 함께 소행성들이 발견되면서 우주 탐사와 우주 비행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그때의 지식인들에게 소행성 이미지는 크기에서는 지금처럼 작았지만,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고 인류의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간주됐다.
생 텍쥐베리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소행성을 어린왕자 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 소행성은 어린왕자의 고향으로 언급되며, 그 소행성이 B-612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생 텍쥐베리는 이를 통해 어린왕자의 출신지와 그가 이해하는 세상이 인간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또한, 소행성은 어린왕자의 독특한 성격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요소다.
소설 속에서 소행성의 크기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작고 고립된 세계에서의 어린왕자가 가진 순수함을 나타내며,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허무함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생 텍쥐베리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로 역할된다.
따라서, 생 텍쥐베리가 소행성을 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한 것은, 그 당시의 지식 사회 분위기에서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요소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 당시의 관점에서 작고 신비로운 세계라는 소행성을 통해 어린왕자의 세계관과 테마를 설정하게 된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그런데.
그랬던 소행성이 지금 시대에서는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소행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충돌’이라는 부분이다.
많은 과학 연구에 의해 전 지구적 환경 변화를 초래했던 중요 사건으로 소행성 충돌이 밝혀졌고, 지금도 간혹 어떤 소행성이 지구를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 충돌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식의 기사가 등장한다.
그 때문에 ‘소행성’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요소가 가미된 매우 논리적이고 과학적 계산이 포함된 접근 개념이 우선되며, 생 텍쥐베리가 소재로 등장시켰던 소행성의 신비함과는 어떠한 동질감도 없다.
지금 시대에 소행성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안전을 위해 가능하다면 회피하거나 파괴시켜야 할 성가시고 부정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이 점이 소설 어린왕자를 번역하는 데 가장 큰 애로점이었다. 심지어 영어 원문 속에는 소행성(Planet)과 별(Star)을 엄격히 구분한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I know a planet where there is a certain red-faced gentleman. He has never smelled a flower. He has never looked at a star.“
번역자로서 원문의 내용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그렇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원저자의 의도를 해치는 내용으로 변했을 때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역자의 이런 넋두리를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원문 그대로 소행성을 묘사해도 충분히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이들도 같을 것으로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고민 끝에 이 책은 소행성과 별을 번갈아 가며 사용할 예정이다. 아마 지금 푸른 행성에 안착해 있을 생 텍쥐베리도 역자가 소행성의 과학적 신비감에 집중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위안해본다.
역자 이준엽 씀.